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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Dec 06. 2023

프라하에 취하다

숭고의 미학

11월 30일 폴란드 국경을 넘어 체코 프라하로 왔다. 입국절차가 없다. 같은 유럽연합이라도 폴란드는 굉장히 엄격하게 심사했는데 체코는 그렇지가 않다. 나중에 프라하 카를교 근처에 몰린 관광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유로운 입국 허가가 낳은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 한 30분 걸으면서 도시가 주는 첫인상을 차분하게 감상했다. 트램과  버스, 그리고 건물들을 통해 프라하를 느꼈다. 규모 면에서는 지금까지 봐오던 도시들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스케일이 다르다. 짐을 풀고 나서  본격적으로 도시 구경에 나섰다. 화약탑,  틴성당, 천문시계, 카를교, 프라하 성까지 이어지는 도보행군 속에서 쉴 틈 없이 새로운 풍경과 건축물들이 계속 등장한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후 3일 동안 같은 코스를 시간을 달리해서 반복적으로 돌았다. 봐도 봐도 지겹지 않은 이 도시 풍광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걸으면서 계속  곰곰이 생각했었다. 프라하는 분명 매력적인 도시였다.  

화약탑과 카를교 Old Town 브리지 타워

 성모마리아 교회



칸트는 인간에게 세상의 사물이나 대상을  인식하는 종류의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사실 여부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논리적 추론도 여기에 속한다.  칸트는 이를 순수이성이라고 불렀다. 두 번째는 옳고 그름을 파악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 실천이성이다. 인간이 가진 도덕적 능력이다. 세 번째는 앞서 말한 두 가지 능력과는 다른 성격의 것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이다. 칸트는 인간이 가진 미를 인식하는 능력을 순수이성과 실천이성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능력으로 분류했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우리 안에서 반응이 일어난다. 감탄사를 지르거나 묘한 흥분에 사로잡힌다. 흔히 감동이라고도 표현한다. 음악이나, 그림, 조각을 감상하고 감동을 느낀다 그 감동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그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예술가들은 평생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아름다움에도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비례, 균형, 조화의 미이다. 그리스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이다. 8등신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파르테논 신전이 비례와 조화와 균형의 미를 잘 보여준다. 석굴암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뛰어난 예술작품들은 비례와 조화 균형의 법칙을 잘 따르고 있다.  특정 얼굴이나 인체의 몸을 보고  대다수 사람들이 멋있다거나 아름답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공통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에 미의 기준은  주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은 아니라도  대다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비례와 조화, 균형의 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 웃기는 것도 아름다움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를 골계미라고 불렀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재현해서 사람들에게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 골계미를 가장 잘 표현한 예술가가 찰리 채플린이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채플린의 탁월한 능력이다.

세 번째가 바로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숭고의 아름다움이다. 숭고란 무엇인가 거룩한 것이다.  절대적 존재를 향한 한없는 경배의 마음을 건축물에 담거나 예술작품에 담는다.  창조된 결과를 보는 순간 작품에 내재된 정신의 힘에 사로잡힌다.  이것이 숭고미이다. 보는 순간 압도당하고 세월이 가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이유는 그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숭고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영원불멸할 수도 있다.

프라하성의 성바투스 대성당과  스트라호프 수도원

구시청의 천문시계 

여행 중에 보았던 많은 건축물들이 종교건축물로 교회나 수도원, 성당 건물이었다. 작고 아담한 건물들도 있었지만 보는 순간 압도당하는 경이로운 건축물도 많았다. 규모도 규모이지만 작고 섬세한 부분까지 손길이 닿아있는 모습을 볼 때 오늘날 현대인들이 저것을 재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 하겠지만 중세인들이 그 건물을  세울 때 가졌던 엄숙함과 절대자에 대한 숭배의 마음은 절대 모방할 수 없을 것이다   

석굴암의 본존불이 내비치는 그 자비로운 미소를 오늘날의 석공들이 정성스럽게 만들어낸다 한들 그를 보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까?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보고 감동한 적이 있다. 내가 감동받았던 것은 피아니스트의 화려한 손놀림과 테크닉이 아니었다. 음악을 향한 그의 경건한 태도와 온몸을 내던지며 혼신을 다하는 연주에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기에 감동을 받았다.

작품에  담긴 장인의 정신세계에 감동하는 것이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그 힘을 느낀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거대건축물은 절대적 존재를 향한 무한한 헌신과 경배와 추앙의 표현이다. 그래서 빛이 바래지 않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비와 눈을 맞으며 색이 바래고 마모되어 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 빛이 나게 된다. 아이러니이다.  불교의 탱화도 큰 것은 2층 건물 높이의 작품도 있다.  그래서 종교건축물들은 규모 면에서나 기술적 측면에서 압도적이다. 보는 순간 숨이 멎는다.  보통의 상식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신앙의 힘이 아니고서야 만들 수 없는 작품들이다.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독일 드레스덴

크로이츠 교회와 개신교 교회

드레스덴 가톨릭 궁궐교회. 세월의 풍화 속에 검게 변해가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불멸의 가치를 만든다.



지극히 높은 정신에 압도당하는 것. 그것이 숭고의 미이다.  숭고미는 건축이나 그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고귀한 희생에도 들어있다. 광주 5.18 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의 엔딩장면은 보고 또 봐도 울컥한다. 나만 그런 지는 모르겠다. 이요원의 마지막 가두방송 대사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여러분 계엄군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시민군이 도청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 광주를 잊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 광주를 잊지 말아 주세요.”  절규하는 그 대사는 잊히지 않는다. 시민군의 한 명이었던 고 윤상원은 도청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아니 죽어야 한다. 그래야만 후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란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교훈을 전할 수 있다”  작가 황석영의 전언이다.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 도 숭고미의 전형이다.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는 고귀한 희생, 숭고한 아름다움 덕분에 1700 만 관중이 N차 관람을 하면서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웠다.  신파와 숭고는 백지 한 장 차이다. 숭고의 정신을 잘 재현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숭고의 본질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 번 상상해 본다.  잠실에 있는 모 대기업의 100층이 넘는  거대건축물이 100년 후에도 살아남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축물이 될 수 있을까?  경제적 효용이 다하면 허물고 또 다른 거대 건축물을 세우지 않을까? 애당초 건축의 동기가 경제적 이윤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대하다고 높다고  다 우러러보지 않으며 불멸의 명성을 얻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높은 건물 짓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우디와 중국이 이미 내달리고 있다.  현재 가장 높은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도 조만간 1등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이런 경쟁은 기술력과 경제력의 과시이다 거기에는 숭고가 없다.

유럽 문명은 두 가지 기둥을 축으로 건설되어 왔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그리스, 로마의 이성과 합리주의가 한 기둥이고  중세 천년왕국을 이루었던 기독교 문명이 또 한 기둥이다. 비록 지금은 유럽에서 기독교 문명의 빛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만 전성기 그들이 가졌던 숭고의 미학은 그들이 건설한 문명에 고스란히 남아 불멸의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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