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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May 18. 2024

여러 문화가 함께 꽃 피운

팔레르모 (1), 시칠리아 풀리아 여행기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는 여러 시대를 거쳐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꽃을 피워낸 도시다. 그 배경에는 복잡다단한 외세 침략의 역사가 있다. 페니키아인으로 시작해서 BC 734년 그리스인의 고린도 문명 전래, BC 5세기경엔 아테네, 스파르타의 분쟁 중심에 있었다. 이어 카르타고의 점령, 1, 2차 포에니 전쟁 후 로마 점령, 반달족 고트족 무슬림의 정복이 이어진다. 노르만 용병 후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세력 등장,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수탈에 이르기까지.

 두 개의 가장 큰 성당, 몬레알레와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이러한 섞임의 예술을 볼 수 있다. 몬레알레 성당은 팔레르모에서 10킬로 떨어진 해발 300미터 카푸토산에 굴리엘모 2세가 세운 것이다. 아랍, 비잔틴, 노르만 양식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다. 웅대한 기둥들이 나란히 서있는 위쪽으로 성경 이야기를 그린 모자이크화가 하염없이 펼쳐있다. 화려하고 장대한 고풍스러움으로 이탈리아 3대 모자이크 장식 중 하나라고 한다.

 뒤쪽의 베네딕트 수도원 정원은 알람브라 궁전의 마당을 닮았는데 고 차분했다. 뜻밖에 마주하는 아랍 분위기는 여전히 질서 정연하고 우아하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234년간 아랍 지배하의 모스크 건물을 거의 그대로 성당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바로크 스타일의 동그란 녹색 돔을 가졌고 내부 장식은 몬레알레에 비하면 단순하다. 역시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분위기인데 프리드리히 2세의 묘도 있었다. (이탈리아어로는 페데리코 2세) 이 외딴곳 시칠리에 독일에 있을 법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유골이라니! 중세 유럽의 복잡다단한 역사와 시칠리에서의 그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모자이크화도 묘하고 흥미로워서, 시차와 점심 후의 졸림으로 비몽사몽 성경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단테에 대한 책에서 읽은 역사 속의 어떤 성당도 팔레르모 옛 도시 성벽 남동쪽으로 반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시칠리아 저녁기도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피렌체 태생 단테의 정치 입문과 캄발디노 전투 참여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의 60%도 이곳에서 쓰였다. 그리스의 섬 미코노스에서 집필을 시작하여 시칠리를 거쳐 로마에서 끝냈다. 그는 한 달 남짓 이곳에서 지내며, 주변이 지옥같이 괴로워서 오히려 낮 시간에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팔레르모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동양인의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며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워내고 있다.

 하루키의『먼 북소리』에 나오는 이 섬의 풍경은 요즈음과 사뭇 다르다. 볼거리라고는 전혀 없어서 관광지로는 빵점인 것처럼 보인다. 하긴 1987년이면 지금부터 37년 전이니까.  


 여기에 어떤 통일감이 있다면 그것은 추악함과 빈곤함이다. 가는 곳마다 경찰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방탄조끼를 입고 자동소총을 가지고 있다. 팔레르모 어디를 가도 마피아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거리는 어두운 공기로 쌓여있다. 어디를 가도 어렴풋하게 이 막이 쳐져 있는 것 같은 어둠이 느껴졌다. 시실리에서 활기가 있는 것은 마피아가 꽉 쥐고 있는 지하경제뿐이다.

 마피아 이상으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동차이다. 팔레르모의 길은 좁은데 차는 많고 운전은 난폭하다.


  2024년 4월의 팔레르모 거리는 어둡지 않았다. 그렇다고 몹시 밝지도 않았는데, 인기 있는 휴양지다운 들뜸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지금은 더 이상 마피아의 무대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만큼의 평온함에 이르고 어두움이 희석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동차는 좁은 길을 빽빽하게 다니나 질주나 경적은 없어 보인다. 마피아가 사라지면서 운전 매너도 차분해졌나 보다.


 옛적 신화 속 음유시인도 이곳에서의 에피소드가 있다. 고대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 왕이 총애하던 아리온이다. 시칠리의 시 짓기 대회에 참가해서 월계관과 상받고, 돌아가는 길에 뱃사람들에게 죽을 뻔했으나 그가 읊은 시가 오히려 돌고래를 감동시켰다.

 르네상스의 선도자라고 예찬받는 프리드리히 2세도 여러 종족의 시인들을 우대하며 스스로 시 짓기를 즐겼다고 한다. 브런치 작가의 시선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이 섬에 얽힌 이름난 문인들의 사연을 만난다. 시칠리에는 글쓰기 뮤즈도 숨어 있나 보다. 나도 한번 만나 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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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라카미 하루키의『먼 북소리』를 다시 펼치게 해 준 배대웅 작가님, 아리온의 전설을 알려준 작가명 미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이대 평생교육원 메디치 인문학 강좌에서 마련한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 섬, 건축 문화 기행 감상문입니다. (4월 23일부터 5월 5일까지 11박 13일)    


** 1282년 부활절 월요일 그곳 성당 부근에서 군중들이 저녁기도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사건이 터졌다.  구 엘프파 희망의 중심인 앙주의 샤를이 몰락하며 시칠리에서 프랑스 앙주 왕가의 통치가 막을 내린 일이다. 프랑스 군인의 여성 희롱이 발단이 되어 화요일 아침까지 시칠리 전역에서 2000명 이상의 프랑스인들이(어린이나 임산부 포함) 죽임을 당하는. 단테의『신곡』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시대적 서사로 '위대한 시'가 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A.N. 윌슨『사랑에 빠진 단테』에서. 이순 (웅진싱크빅 단행본 개발본부) 발행

베르디도 이 사건을 배경으로 오페라를 지었다.

 

## 대문의 사진: 팔레르모 대성당 내부 벽화. 

    

몬레알레 성당 뒤 수도원 정원                                                                            


수도원의 분수     /                                      몬레알레 성당 내부 기둥                    



 

수치의 분수
프리드리히 2세의 묘/                                          시내 중심가
콰트로 칸티: 사거리의 각 코너에 조각상을 세운 바로크양식 건물이 있다

photo by Lambsear and her collea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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