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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Sep 11. 2024

대왕문어의 사랑

ACCI 작가님 <바람>의 댓글 동화

 선셋비치의 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바람은 거세었으며 바다는 푸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오늘이 역사적인 날인 것을 모르는 것이다. 바람과 심드렁 씨와 몇몇 요원만 알고 있는 비밀 작전의 열매, 나, 대왕문어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날인 것을.  

 심드렁 씨는 하염없이 친구와 모래성만 쌓고 있다. 중요 역할을 잊어버린 것만 같아 속이 터진다. 범사에 심드렁하다고 소문난 것을 알지만. 일생을 거쳐, 목숨 바쳐 공들인 내 사랑이 막 열매를 맺으려 하는 이 시간. 이렇게 무심하고 태평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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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찌님을 처음 만난 그날부터 하루도 오늘의 만남을 꿈꾸지 않은 날이 없다. 사람나이로 치면 아홉 살 때다. 부모님 명을 어기고 처음으로 육지에 다가가 헤엄치고 있었다. 요트도 아니고 서핑보드도 아닌 처음 보는 나선형 물체가 점점 내게 다가오고. 어른들 지침에 의하면 도망가야 하는데 호기심이 발동해서 긴 다리를 뻗치는 순간 퍽. 정신을 잃고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근심 어린 두 얼굴과 마주했다.  

“노에 맞고 튀어 올랐네.”

“어린이 문어예요. 살려줘야죠.”

 많이 어려 보이는 쪽이 말했다.

“아냐 사춘기 이상은 됐을 거야. 이목구비를 꽤 멋지게 갖춘 걸”

 큰 사람은 바다에 나를 놓아주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문어야. 본의 아니게 한방 먹여 미안해. 사랑의 펀치로 생각해 줘.”

“네?” 헤롱거리는 중에도 얼떨떨했다.

“튼튼하게 자라서 멋진 대왕문어가 되렴. 그때 또 만나~”

 그날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초등 고학년 정도의 내가 사춘기 소년처럼 비쳤다는 것과 꽤 멋지다는 말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는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그녀는 종종 바다에 나타나서, 우리 왕국에 소문이 나 있었다. 이름이 아찌라는데 그 패들링 노에 꿀밤 맞은 녀석들이 여럿이다. 그때마다 진심으로 미안해했기 때문에 우리들 가운데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일일이 확인해 보니 ‘사랑의 펀치’로 생각해 달라는 인사는 오직 내게 뿐이었다.

 또래들과의 놀이가 점점 재미없어졌다. 날씨가 잔잔한 날이면 조카랑 함께, 혹은 혼자 패들링 오는 아찌님을 볼까 해서 해안 근처를 배회했다. 그녀가 확실하면 패들보드 옆을 나란히 헤엄치며 기다란 노 끝부분에 다시 한번 맞아보려 애썼다.

 처음 친지들은 한갓 어린이의 동경이라며 내 마음을 일축했다. 사람 나이로 십 대가 되어서도 나는 아찌님의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마음에 새겼다. 아찌님이 내게 첫눈에 반했듯이, 또 그녀의 축복 덕분인지 나는 흰색과 갈색톤이 선명히 어우러진 우람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둘레에서 대왕문어의 간판스타라고 칭송을 보낼 때면 어서 아찌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버지는 오징어, 한치, 꼴뚜기, 낙지, 갑오징어까지 두족류 왕국의 영토를 평정하고 나를 볼 때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라며 뿌듯해했다. 어머니는 갑오징어 족장의  아리따운 공주가 뼈대 있는 집안이라며 그녀와의 약혼을 서둘렀다. 내 사랑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몸이 날마다 야위어 갔다. 상사병 앓는다는 소문이 어느새 퍼져, 패들링 보러 육지가까이 가는 것도 금지되었다.

 어느 날 두 오징어가 찾아왔다. 바다의 마녀 1, 2가 보낸 부하들이다. 인어공주를 도운 경험이 있다며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디즈니 애니의 뚱뚱한 마녀 1은 평이 좋지 않아 곧장 거절하고 안데르센 동화 마녀 2의 해법은 일단 들어는 보았다.

 결국 몸을 포기해야 하는 영혼의 만남이라면 마녀를 거치지 않고서도 가능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몇 날을 고민하는데 우리 왕국의 007 제임스본드를 자처하는 이가 찾아왔다.

“정말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거요?”

“제 팀이 수행하는 작전이 많습니다만 특히 사랑의 미션에 공이 큽니다.”

“능력을 증명해 보이시오.”

“은행나무의 사랑을 맺어주고 있죠.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부터~”

“고작 식물의?”

“엄밀히 말하자면 왕자님처럼 아홉 살 때 한눈에 반한 단테 알리기에리의 사랑까지….”

“이름이 뭐요?”

“바람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기는 하죠. 자꾸 바람났다고 표현하는데 저는 사실 진실한 사랑 전문입니다.”  

 바람은 심드렁이라는 지상의 비밀 요원까지 동원해 치밀한 작전을 짰다. 캘리포니아의 심드렁 집안은 은밀히 바람의 미션에 협력하는 대가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내를 얻는다고 한다. 아찌님이 트레일러닝 등에 빠져 산과 공원에만 가기 때문에 바다에 나타나기까지 3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바닷속 결혼식과 왕위 계승식이 열리기 전, 문어 잡이 배의 출항에 맞춰 날을 잡았다. 두족류 왕국에서는 귀한 왕자를 잃는 큰 슬픔을 겪는 날, 9월 11일, 내 영혼은 드디어 아찌님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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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확 쓸어버려~” 바람은 파도를 끌어다 심드렁 씨의 어설픈 모래성을 무너트려 버렸다.

“아고~”

 심드렁 씨의 미션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대충 지은 성이라 허물어지고, 아찌하니님 거는 튼실해서 남은 것이 아니다. 영문을 모르는 아찌님과 친구는 웃기다는 듯 ‘풉’ 소리를 내며 돌아눕고, 피부가 꿉힌다며 종알거린다.

 드디어 두 남자가 내가 깃들 커다란 천 뭉탱이를 끙끙거리며 가지고 나온다. 아뿔싸! 그런데 이를 어쩐담, 아찌님이 화장실로 가버리네. 내가 풀이 죽어 있으니 바람이 건들며 지나간다.

“2년이나 기다렸으면서 까짓 5분을 못 기다려?”

 아~ 드디어 아찌님이 연이 되어 비행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입이 헤 벌어진다.

“와우~ 우아한 대왕 문어네요.”

“한번 잡아 볼래요?”

 심드렁 씨가 심드렁하게 실타래 손잡이를 건네며 마지막 임무를 마친다.

 바람이 팽팽한 실을 만들어 나와 아찌님을 연결해 주었다. 함께 느끼는 리듬! 우리는 함께 격렬한 광시곡을, 부드러운 왈츠를, 번갈아가며 추었다. 해님은 금빛 조명을 쏘아대며 쪽빛 바다는 백댄서로 넘실, 조연으로 끼어든다. 바람까지 신이 나서 영웅심을 발동해, 하마터면 아찌님이 나랑 나란히 선셋비치의 창공을 날 뻔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작전에 넣지 않은 것이 아쉽다.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아찌님은 이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바람의 심장이 내 몸으로 옮겨와 뛰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맞춰 숨을 쉬었다.’

 어흑! 바람의 심장이라니.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을 위해 어떤 오해는 감수할 밖에. 그녀에게 가만히 속삭여본다.

“아찌님! 그 심장 고동은 바람의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대왕문어~ 제 박동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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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I 작가님 9월 11일 발행 글 <바람>을 읽고 써본 동화입니다. 많은 표현들을 그곳의 문장에서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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