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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Jun 30. 2023

내 입장

<나는 진짜 나만 생각한다> 시리즈

<작업실> 종이에 펜, 과슈, 18k 금박, 16 x 23 cm, 2023

"아빠."

"응?"

"아빠는 어느 회사에서 일해?"

"... 어- 음, 아빠는..."


 너무 많이 미안했다. 콩돌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가 사리분별을 할 때까지만'이란 전제로 작업을 계속했는데 어느덧 눈치 빠르고 말문이 금세 열린 아이는 나의 일과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혀에 침이 싸악 마르고 어색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콩돌이가, 아까... 회사를 물어보더라고."

"근데, 그게 뭐?"

"미안하잖아, 다른 아빠들이랑 다르니까. 친구들이랑 수업 때 소개해야 할 순간이 있을 텐데."

"그림 그리고 작업하는데, 뭐."


 이번 여름이 다가오기 전 어느 하루, 아내와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를 마시며 괜히 좋은 맘을 표하고 싶었다. '내가 다 잃어도 당신이랑 아들만 있다면 괜찮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내가 난처해할 때마다 '뭐, 그거 별거 아닌데 어쩌라고.'라는 식의 아내가 보이는 당당한 태도가 흔들리는 내 맘을 꽉 쥐어주 고마움이 쌓인 결과였던 것 같다.


 나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또 그리 잘 그리지 못했다. 칭찬을 받으며 진로 트랙에 올랐지만 늘 나보다 빛나는 재능들의 그림자 안에 묻혔고, 자연히 나 스스로의 한계를 떠올렸다. 그런데도 참 계속하고 싶었다. 비웃음을 사거나 별반 반응이 없어 속상할까 봐 숨어서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했고, 어느새 아들이 말을 하며 쫑알쫑알 '아빠의 직업'을 묻기 시작한다.


 요즘 들어 그림 그리는 게 정말 재미있다. 퀴퀴하고 습하고 씨끄럽고 어두운 지하 1.5층 시멘트 창고에서 진땀을 흘리며 마스크를 쓰고 실을 꼰다. 그리고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낙서를 한다. 조금 진지한 걸 하고 싶으면 깨끗한 종이에 조심히 선을 쌓아간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새에 시간은 훌쩍 8시간, 10시간씩 지나가버린다. 이제 가족, 몇 안 남은 친구 외에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곳도 없어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 싶지만, 그리고 만들고 운 좋게 전시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다.


"콩돌아."

"왜, 아빠. 또 방귀 뀌었어?"

"아빠는 그림 그리고 전시하고 그림을 팔 수 있으면 파는 일을 해. 그게 아빠가 하는 일이야."

"어디서 해?"

"음-, 작업실?"

"나, 가보고 싶어."

"음-, 청소해야 돼. 다음에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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