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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Sep 30. 2023

얼터멋 효도왕

<전의 의미> 시리즈

<나는 효도왕이 되어 가는가?> 종이에 과슈, 23 x 16 cm, 2023

 집안 막내로 귀염을 받던 시절에 그냥 냠냠 먹어대던 알록달록 꼬치전. 이제 그 전이 만들어진 경위와 먹기보다는 만드는 몫을 짊어지는 세대가 되었다. 도대체 1년에 네 번 정도, 무념무상의 경지에서도 몸이 자동반사적으로 뒤집어대는 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와- 이건 도대체 언제 적 녹두전이야."


 온전히 솟구친 자태를 유지한 생선과 부드러운 모서리를 이룬 산적은 정말 암석처럼 굳어 자칫 아내에게 맞으면 아주 훌륭한 둔기로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냉동실의 이곳저곳 그리고 냉장고에 켜켜이 쌓인 정성스러운 음식은 '그래도 언젠가는 먹으리라'는 다짐을 비웃으며 있는 대로 쉬거나 본연의 맛은 저만치 보낸 채 냉장고의 체취를 받아들여 벌칙이나 상금이 없는 한 다시 먹을 수 없게 된다.


 모두가 밤잠을 설치며 새벽부터 모여 신선한 재료를 손질해 이리저리 애써만든 음식은 본의 아닌 외면 속에 오래간 잊히고 먼 훗날 한창때의 미모와 향을 지운 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집단으로 모여서 서로 앙금이 생길 말을 피한채 따뜻하게 만들어낸 음식에는 '효'와 '떠난 분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차례와 제사의 큰 부분을 담당하지 않으면서도) 어느덧 행사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어서인지 혼잣말과 만만한 아내에게 현란한 말기술로 전의 의미와 그에 대한 불만을 뿜어낸다.


 "아니! 안 먹는 음식을 말이야, 바쁜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응? 감정상하면서 만들고 그리고 다 못 먹고 태반 버리는데 말이야. 이게 효란 말이야? 이러니 문화혁명이 일어난 거라고."


 만들어진 음식을 제기에 몇 번 담아 옮기는 일 외에는 크게 참여하지 않는 내가 정확한 분석을 내놓으며 그 고생에 대한 반감을 유감없이 쏟아낸다. 그리고 내 나이적 엄마와 큰엄마들이 떠나갈듯 왁자지껄한 남자들의 목소리에 추임새 한번 섞지 않고 묵묵히 탕국을 끓여내고, 송편을 빚고, 조카들이 기웃거리면 입속에 넣어주던 동그랑땡과 꼬치전을 꾹 닫힌 입과 초점 없는 눈으로 뒤집던 모습이 괜히 생각났다. 그들은 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먹지 않는 음식과 남이 먹은 그릇을 만들고 치우는 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냐는. 공자님이 강조한 '효'라는 말로 탄탄하게 유지된 사회의 질서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 정말 존재할지 모를 세상을 떠난 조상님의 은덕이 세상모르고 깔깔거리며 입속으로 욱여넣는 전 속에 숨어있다는 걸 믿은 것일까?


"이렇게 모이니 좋네요. 약주 한잔씩들 하셔요."


모두에게 하고픈 말은 결국 혼잣말로 중얼거리거나 아이가 잠들 무렵 아내와 120분 토론을 가지며 서로 할 만만 하는 평행선을 달리는 중에 해소된다. 그리고 모두가 다시 모인 명절, 벌써 수십년 동안 반복되는 몇 시간의 아이스브레이킹을 친인척들과 갖고 조금은 편해진 분위기에서 본심이 섞인 웃음을 지으며 청주와 전, 산적을 먹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전이 참 맛있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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