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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Jan 18. 2024

낮아진 언덕, 탄 물 上

2024 개인전 <영원한 물결>

<낮아진 언덕, 탄 물> 종이에 펜과 색연필, 23 x 16 cm, 2024

 점점 말 한마디의 무게에 놀란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화악 펼쳐놓으면 온 세상 사람들과 한마음 한뜻이 된다고 느꼈는데, 이젠 그럴 용기가 없다. 괜한 말이 불러일으키는 오해나 갈등을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은 절대 안 하는 것이 최소한의 품위유지에 도움이 된다.


 괜찮다며 속내를 숨긴 엄마를 끌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콩돌이 엄마는 내가 딸보다 더 딸 같은 아들이라고 했는데, 바지를 벗고 팬티바람으로 욕조에 들어가 고개를 되는 만큼 숙인 엄마의 머리를 물로 적셨다. 이제 나도 더는 어린 나이라 할 수 없기에 스타일링은 어려워도 빼곡한 머리를 보면 무척 감사한데, 엄마의 머리에 샴푸를 묻혀 거품을 내다보니 70이 된 엄마의 머리숱이 이리도 많았나 새삼 놀랐다. 말 그대로 샴푸를 열 번 정도는 꾹꾹 눌러 머리를 이쪽저쪽 비비며 거품을 냈는데, 머리카락 뿌리 쪽에 잔뜩 올라온 흰머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엄마가 무슨 70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풍성하고 검게 관리된 엄마의 머리를 직접 만져보자 메마른 푸석한 무명실에 염료를 부어 물을 들인 것 같이 거칠었다. 샴푸로 머리카락을 문지를수록 스며들어있던 염색약은 수채화 물감처럼 풀려나왔고, 욕조 바닥은 검은 물로 내 발가락까지 차올랐다.


 마치 누룽지를 까맣게 태운 냄비를 닦으려 물을 붓고, 끓이고 벅벅 벗겨낸 후의 검은 물처럼, 엄마는 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시커먼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게 왠지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모습 같았고, 그 눈물은 눈에서 흐른 게 아니라 그간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슬픈 일들이 속을 태워 검게 섞여 나온 것 같았다. 한쪽 팔은 꽁꽁 묶어놓은 채 어색한 왼손으로 허우적대는 엄마를 보자 세월의 무상함에 맘이 아프다가 문득 뜻하지 않은 복수를 한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나는 엄마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엄마가 내 머리를 감겨주던 무렵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왼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 안 남았을 만큼 오른손잡이로 자라났다. 친할머니는 '왼손잡이는 제사도 못 들어온다'며 엄마에게 압박을 주었고, 나는 아주 어린 시절 내 기억이 시작될 즈음 왼팔과 몸이 함께 묶여 오른손으로 삐뚤빼뚤 글씨를 쓰던 일이 종종 생각난다. 지금은 그림도, 젓가락질도, 컴퓨터 마우스도, 군생활 때는 사격도 모두 오른손으로 거뜬히 해내왔다. 그런 내게도 오른팔과 오른손은 몹시 어색했던 시절의 감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데, 올해 칠순 생일을 앞두고 치른 어깨근육수술 후 오른팔을 깁스와 보호대로 묶어낸 엄마가 꼭 당신이 끈으로 칭칭 감아놓은 어린 시절 내 모습과 닮아있었다. 나는 엄마를 위해서 젓가락 대신 포크를 가져다주었고, 밥도 차려줬다.


 엄마의 머리를 두 번째 감겨주던 날, 며칠째 미룬 콩돌이의 목욕도 해주었다. 그리고 몇 주째 씻지 않은 럭키(엄마네 강아지)를 보자 괜한 측은지심이 타올라서 개 목욕까지 시켰다. 엊그제 불현듯 닥쳐온 개인전은 단 50여 일이 채 남지 않아서 마음속 시한폭탄 장치가 째깍째깍 초침을 돌려대는 것 같아 불안이 엄습했다. 할 일은 너무 많고, 또 콩돌이 엄마랑 약속한 일들을 못 지키게 되었고, 엄마를 챙겨야 하는데 몸이 너무 피곤했다. 밤새 준비를 거뜬히 마치리라는 다짐은 눈 녹듯 사라지고 나는 어느새 침대에 누워 양치도 않고 코를 골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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