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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타우 Dec 11. 2023

악마에게 현혹되는 동행, 악마가 되어가는 복수

티빙 <운수 오진 날> 리뷰

<운수 오진 날>은 단순히 연쇄 살인마가 나오는 스릴러 드라마 정도로 생각하고 본다면 큰 낭패에 빠질 수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살인마 금혁수는 단연코 드라마 역사상 가장 무서운 살인마이다. 단순히 사람을 죽인 숫자로만 봐도 역대급 캐릭터가 맞지만, 그의 생각과 말 그리고 엽기적인 행동은 살인마보다는 사실상 악마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악마와 10시간을 함께 동행해야 하는 시청자들도 시종일관 악한 기운에 시달리게 된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평범한 인물이 악으로 물들어가는 과정

<운수 오진 날>은 원작 웹툰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따라간 파트1과 오리지널 스토리인 파트2로 나눠지며, 두 파트의 기조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파트1은 운전기사 오택이 연쇄살인마 금혁수에게 유린당하는 과정이고, 파트2는 그런 오택이 살인마에게 복수하는 정반대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파트1은 오택이 악마에게 현혹되는 과정을, 파트2는 오택이 악마를 잡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운수 오진 날>은 평범한 인간이 맞이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서서히 악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파트1은 오택이 악마에게 현혹되는 과정을,
파트2는 오택이 악마를 잡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파트1 동행 : 악마에 현혹되는 과정

최근 드라마들은 살인범의 서사를 디테일하게 그리지 않는데, 이 작품은 살인마 금혁수의 서사를 아주 디테일하게 그려 넣는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살인마의 근원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하고, 이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망나니 장경철과는 전혀 다른 순수한 악에 가까운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바탕이 된다. 물론 이와 비등하게 운전기사인 오택과 아들의 살해범을 쫓는 황순규까지 주요 인물들의 서사 또한 설득력 있게 빌드업해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들이 택시라는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면서, 살인자와 동행이라는 굉장히 독특한 로드무비가 형성된다. 

살인마 금혁수의 서사를 아주 디테일하게 그려 넣으면서, 자연스럽게 살인마의 근원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행에서 금혁수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악한 기운을 오택에게 조금씩 물들인다는 것이다. 금혁수의 살인 행각보다 더 무서웠던 건, 악마 같은 그의 말과 행동으로 선한 마음을 믿는 오택을 현혹시키는 과정에 있었다. 결국 딸의 죽음으로 오택에게 극한의 고통과 분노를 심어주지만, 금혁수는 그러한 과정마저도 즐거워한다. 이 놀랍고도 파격적인 캐릭터를 보는 공포가 오택의 복수의 과정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독특한 감정을 선사해 준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이러한 감정들이 최악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행에서 금혁수가 자신의 악한 기운을 오택에게 조금씩 물들인다는 것이다.
악마 같은 그의 말과 행동으로 선한 마음을 믿는 오택을 현혹시키는 과정이 정말 무섭다.


파트2 복수 :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

파트2는 극한의 분노에 사로잡힌 오택이 스스로 악마가 되면서 이병민(금혁수)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다. 결국 악마를 잡기 위해 악행을 행하는 오택과 이러한 모습을 반기는 이병민의 관계에서 누가 진짜 악마인지 묻게 되는 이색적인 장면들이 연출된다. 파트1이 파격적인 캐릭터가 선사하는 공포와 스릴러에 초점을 두었다면, 파트2는 복수라는 장르적 쾌감에 집중한다. 물론 마지막에 오택은 자신이 줄곧 믿었던 선한 의지를 믿으며, 악마가 아닌 모든 가족이 믿고 따랐던 아빠이자 평범한 사람이 되는 선택을 한다. 전반부의 파격적인 설정에 비해 오히려 내려놓는 엔딩을 선사하면서, 복수라는 장르적인 쾌감을 완성시키진 못한다.

오택이 스스로 악마가 되면서 금혁수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파트2.
악행을 행하는 오택과 이러한 모습을 반기는 이병민의 관계에서 누가 진짜 악마인지 묻게 되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장르물로서의 재미

<운수 오진 날>을 보면 연쇄 살인마를 다룬 여러 걸작 영화들이 보인다. <악마를 보았다>와 <추격자> 그리고 데이빗 핀처의 <세븐>도 보이며, 강렬한 복수를 다룬 파트2에선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마저 보인다. 이렇듯 여러 스릴러 작품들의 클리셰가 난잡하게 섞여있지만, 동행과 복수라는 단순한 이야기에 힘있게 뻗어나가는 연출이 이러한 클리셰를 매력적으로 잘 섞어 놓는다. 잦은 클로즈업으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연출부터 리듬감 있는 편집, 여기에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BGM까지 장르물로써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선보인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극한의 연기를 리얼리티 하게 잡아내는 촬영과 카메라 워킹이 강렬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운수 오진 날>을 보면 연쇄 살인마를 다룬 여러 걸작 영화들의 클리셰들이 보이지만~
동행과 복수라는 단순한 이야기에 힘있는 연출이 이러한 클리셰를 잘 섞어 놓는다.


개연성마저 설득시키는 현혹

장르물로서 이 작품이 주는 재미는 확실하지만, 범인을 잡는 추격 물로서 바라보면 개연성에 여러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금혁수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쳐버리는 파트1의 과정은 상당히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악마에 현혹된 오택의 심정으로 바라본다면 도저히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다. 알 수 없는 딸의 생사와 죽음이 앞에 있는 극한의 상황, 그리고 전대미문의 캐릭터인 금혁수의 현혹. 오택의 심정과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상황들도 어느 정도 설득이 가능해진다. 

금혁수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쳐버리는 과정이 상당히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악마에 현혹된 오택의 심정으로 바라본다면 도저히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다.


원작을 벗어난 파트2의 아쉬움

오택의 복수를 그린 파트2는 충분히 복수라는 장르적 재미를 줄 수 있었지만, 오히려 금혁수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약화시키는 단점도 드러낸다. 어떠한 약점도 없는 순수한 악인것 처럼 보였던 금혁수가 이병민이 되면서, 약점이 너무 많은 캐릭터가 되어 버린다. 이는 오택이 똑같은 복수를 해줘야 한다는 설정으로 인해 이병민에게 너무 많은 속세의 것들을 쥐여주면서, 완전무결했던 금혁수의 캐릭터는 그저 평범한 살인마로 전락하고 만다. 

너무 많은 속세의 것들을 쥐어주면서 완전무결했던 금혁수의 캐릭터는 그저 평범한 살인마 이병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복수를 내려놓은 결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그전까지 과정이 너무나 극한으로 치달렸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 해피엔딩을 위해 너무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는 느낌이다. 차라리 원작대로 파트1에서 끝냈다면 훨씬 더 완벽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특히 파트2는 전체적인 기조뿐만 아니라 극본에 여러 빈틈을 드러내면서, 계속되는 개연성의 문제를 드러낸다. 그나마 오택과 이병민을 연기하는 이성민과 유연석의 눈부신 연기가 부족해 보이는 개연성마저도 최대한 이해시키고 설득시킨다. 

복수를 내려놓은 결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는 느낌이다.




조커가 보이는 유연석

<운수 오진 날>이 오픈하기 전 '유연석에게 조커가 보인다'라는 홍보 기사를 읽고 솔직한 마음으로 살짝 비웃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 볼수록 나의 비웃음은 민망함을 넘어 감탄으로 바뀌고 있었다. 정말로 보이더라. 

 

유연석에게 조커가....

유연석에게서 정말로 보인다. 조커가..

유연석은 기존에 자신이 연기한 부드럽고 지적인 연기를 베이스로 마치 무의식중에 그 틀을 깨부수는 살인마 연기를 선보이는데, 이게 그동안 보여줬던 연기와 너무 이질적으로 보여서 정말 여러 번 소름이 끼쳤다. 파트1에서는 베테랑인 이성민과 이정은이 그저 관찰자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임팩트가 대단했다. 유연석이 초창기 악역으로 데뷔한 이유가 그의 반듯한 외모에서 비치는 비열하고도 나약한 모습 때문인데, 그러한 모습 위에 중첩되는 악행의 모습이 상당히 파괴적으로 느껴진다. 좋은 배우라고 생각은 했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구동매 이후 유연석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에 대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희대의 살인마를 그려내는 그의 눈빛과 표정은 테크닉적인 연기와는 너무 거리가 먼, 진짜 순수한 악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드라마 악역 중 손에 꼽을 캐릭터를 탄생시키면서, 내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반드시 후보에 올라야 할 자신의 인생 연기를 선보인다.

기존에 부드럽고 지적인 이미지를 베이스로 마치 무의식중에 그 틀을 깨부수는 살인마 연기를 선보이는 유연석.
반듯한 외모에서 비치는 비열하고도 나약한 모습 위에 중첩되는 악행의 모습이 상당히 파괴적으로 느껴진다.


다시 한번 경이로운 이성민

이성민의 연기력에 어떤 극찬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그는 또 한 번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한다. 사실 파트1의 중반부까지는 강렬했던 유연석의 연기에 그마저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반부 조금씩 금혁수의 모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성민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파트1의 엔딩신에서 보여준 후회와 참회, 그리고 분노와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광기에 가까운 연기는 브라운관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강렬한 연기였다. 분노의 감정을 고스란히 토해내며 누가 진짜 악마인지 모를 정도로 복수에 올인하는 파트2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작년 진양철 회장의 연기로 연기적인 테크닉에서 절정을 보여줬다면, 올해 <운수 오진 날>의 연기는 그의 감정선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최대치의 모습을 감상하는 순간이었다.  

또 한 번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하는 이성민!! 평범한 소시민을 연기하지만~
조금씩 금혁수의 모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한다.




운수 오진 날 (티빙. 2023)

<운수 오진 날>은

올해 본 스릴러 드라마 중에서, 아니 근 몇 년 동안 본 스릴러 드라마 중에서 가장 무섭고 끔찍한 작품이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스토리와 놀라운 반전, 그리고 리듬감 있는 연출까지. 여기에 경이로웠던 역대급 캐릭터와 이를 극한의 감정으로 연기한 배우들까지 더해져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에 너무나 충실한 작품이었다. 물론 원작을 벗어난 파트2가 여러 아쉬운 단점들을 보였지만, 이러한 장르의 요소 하나하나에 평가를 해야 한다면 정말로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도 영화 <악마를 보았다>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작품이 그래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에 목적을 둔다면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결국 이 작품을 관람하고 남는 건 피폐적인 감성과 허무함, 그리고 머릿속에 남아있는 악한 감성의 잔상들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잔인함의 잔상들이 분명 어떤 이에게는 불쾌함과 짜증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작품이 현재 극명하게 호불호가 나뉘는 이유이다.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운수 오진 날>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절대 볼 수 없었던 기운의 스릴러 작품이라는 것이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이러한 것도 하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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