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 대하여
공감(共感)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나는 우리집이 가난한 것이 싫었다. 같은 골목 빌라에 사는 같은 반 친구를 보고, 반지하에 사는 나는 그 친구와 마주치기 창피해서 길을 돌아간 적도 있고,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철없던 내 모습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묵인되었다. '쟤는 언니랑 다르게 이상한 애야' 라는 말은 들을 수록 나를 지치게 했다.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내 편은 없었다. 가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그렇게 각자 하루하루 버텨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했다. 적어도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자랐던 나는 가족에 대한 반감만 커졌다. 나는 내가 힘들다는 걸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고마울 것 같았다. 그래서 공감이라는 건 인간관계에서 무조건 좋은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 나의 성향을 알아 챈 사람들은 나의 공감능력을 약점으로 이용했다. 그들은 어떤 말이든 공감해주던 내 반응을 재미있다며 즐겼다. 하지만 그들의 거짓말은 갈수록 심해졌다.
"우리엄마 미친년이야"
"나 저 사람이랑 양다리야"
"나 나이트가서 원나잇해"
"나 임신했어"
"오빠가 점점 스킨쉽이 없어지네 원래는 안그랬는데"
"너도 모텔같은 데 다니지? 나도 그랬는데"
"나도 반지하 살았던 적 있어"
나는 그게 정말 그들의 고민인 줄 알고 솔직하게 답해줬다. 자신의 엄마를 욕하는 친구에게는 나도 그런 생각 가진 적 있다며 같이 부모님을 욕했고, 양다리 걸친다는 친구에게는 전 남친같은 사람 없다고 말했다. 나이트에 가서 원나잇을 한다며, 소설 쓰듯이 자세하게 묘사하던 그 친구는 나는 그런적이 없다고 말하자, 기분 나쁘다는 듯이 가버렸다. 나를 더러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는 말들이었다. 그 밖에도 내가 암환자가 되었을 때 병원에 찾아온 친구는 내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12층을 계단으로 한달음에 걸어 올라왔다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하고, 자기들끼리 재밌다며 좋아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너무 창피했다. 본인들은 창피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까지 나를 속여야 했을까. 그들은 내가 말하지 않는 은밀한 부분까지도 알고 싶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공감해 달라고 떼쓰는 아이처럼 행동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들의 말을 받아주려고 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 친구들이 고마웠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나에게 그 친구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웃기지도 않은 나의 농담에 너무 재밌다며 다같이 웃어주었다. 일부러 웃어주는 것조차 나는 고맙다고 생각했다.
전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1년 동안 아무말 없이 나를 챙겨줬던 그 사람이 고마웠다. 그래서 직장동료가 자신과 같이 있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어이없는 거짓말에도, 나에게 욕을 했을 때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나를 말렸다. 남자친구도, 친구들도, 학교사람들도 만나지 말라고 했다. 다들 쓰레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왜 그런지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모른 채로 넘어갔다.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내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이 직접 보지도 않았고, 잘 모르고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두라고 했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나 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 한 번 믿기 시작하면 누가 어떤 얘길해도 듣지 않았다.
나는 공감이라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렇게 나쁘게 이용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사람을 너무 몰랐던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의 거짓말까지 포용해줄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거짓말을 하고 상황을 모면한 적이 많았으니까. 무슨 사정이 있겠지, 내가 모르는 다른 이야기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람들을 열심히 공감해준 결과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것 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지쳤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소리는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어떤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고,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할 뿐이었다.
나는 늘 우울했지만 그게 무엇 때문인지, 누굴 탓해야 하는 것인지도 헷갈렸다. 나를 놀리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구보고 책임을 지라고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차라리 나를 탓하는 것이 익숙했다.
내가 너무 몰라서 그래.
내가 너무 바보같아서 그래.
내가 사람들 말을 안들어서 그래.
내가 사람들을 화나게 해서 그래.
나를 탓할 이유는 너무 많았다. 나는 또 다시 그런 나를 버리려고 했다.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내성적인 내 모습을 버리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바꾸어 보여줬던 것처럼 나는 또 다시 그런 나를 바꾸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싶고, 나 또한 사람들을 공감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는 정작 나 자신을 공감해주지 못했다. 늘 불만이 가득했던 나는 그런 나를 인정하지도, 포용해주지도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을 누군가가 받아들여주길 바라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가 공감해줄수록 사람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은 나를 속이기 위해 그렇게 거짓말까지 했던 그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본인들은 그게 재밌었을지 모르지만,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 친구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 하는 일도 없는 애들 아니냐 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특별히 하는 일도 없던 그들을 친구라고 계속 믿어주었다.
사람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다. 관계가 깨졌다고 해서 누구 하나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깨져서 산산조각이 나버린 관계를 어떻게든 주워담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럴 필요조차 없음에도 나를 받아줬던 사람들이라서 고맙다는 이유로 그렇게 버텼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많이 다치긴 했지만, 그 때의 내 모습 또한 나라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포용해주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이제는 내가 나를 온전히 안아주겠다고.
그렇게 외면했던 과거를 직면할수록 마음은 아프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