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에 대하여
우울증을 앓은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확실히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내 마음이 힘든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평소보다 생각이 많아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정신과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그 말도 듣지 않았다. 내가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
살면서 내 원동력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우리 집을 일으키고 싶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신용불량자가 된 건 내 억울함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를 믿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23살에 처음 취직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내가 하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을 잘하고 싶었지만 서툴렀다. 밤을 새우고 새벽까지 일해야 했던 내게 돌아오는 말은 '너 바보냐'라는 말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말 한마디에 상처를 크게 받는 사람이었다. 왜 그랬을까. 어린 시절부터 나를 향한 비웃음과 따돌림 그 사이에서 내 감정은 항상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예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감정은 항상 좋았다가 안 좋기를 반복했다. 아니.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지 않고 나에게 상처만 주는 가족들을 미워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도 내가 우울한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성추행, 성희롱, 따돌림에 직장 내 괴롭힘, 신용불량자까지 겪었기에 우울한 건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힘이 없는 과거의 그 일들이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지 본질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내가 정말 마음이 아픈 이유가.
나는 이상주의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은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었다. 나는 예뻐야 하고, 일도 잘하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하며 사람들이 모두 나를 좋아해야만 하고, 착하고 재미있는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 좋은 회사에 가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노력하면 무조건 잘 될 것이고, 분명히 좋은 사람들이 있는 좋은 회사가 존재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리던 완벽한 사람으로 기능하지 못하면 회사를 그만두곤 했다.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온 나는 내 존재 가치를 내가 세상에 어떻게 기능하고 있느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큰 꿈을 꾸고, 항상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왔다.
대기업을 퇴사하면서 내가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생각에 나는 나를 미워했었다. 내가 좀 더 노력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나를 탓하기만 했다. 나에 대한 기대, 사람에 대한 기대가 컸던 나는 또다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실망이 컸다. 완벽한 내 기준에서 멀어진 나의 모습은 점점 나를 싫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알맹이는 없고 형체만 있던 자존감은 무너졌다.
내가 마음이 아픈 이유는 내면에 내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도 내가 아니라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던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내 안에는 내가 없고, 내 주변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출 뿐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일이 잘 안 풀리면 다른 사람 탓으로 돌렸다. 가족들은 내 앞을 막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뭐든 말하고 싶었던 건 관심을 받고 싶어서였다. 나는 이렇게 힘들다고, 나 좀 이해해 달라고 혹은 나는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받고 싶은 아이 같은 마음이었다. 더 이상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를 뒤에서 괴롭히던 그 친구는 나를 주기적으로 만나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했다. 나는 그것도 고마워서 내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이야기까지 했다. 사실 그 친구가 질문하는 것에는 다 대답해 줬다. 나와 가족들의 사적인 정보까지. 그걸 가지고 뭘 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를 믿어주던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에 지쳤다. '너 때문에' '자업자득' '네가 그런 거야'라는 사람들의 말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것뿐인데, 그 모습을 보고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럴수록 내 마음에도 화가 많이 쌓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컸다. 나는 나를 지키지도 못했고, 가족들에게도 그러지 못했다. 물론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 같은 모습과 항상 불만이 가득했던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일 수도 있다. 사람의 본성은 힘들 때 나온다고도 하지 않는가.
내가 혼란스러운 건 그 때문이었다. 피해자는 나인데 그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는 죄책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 죄책감은 우리 가족에게만 가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이었나. 내가 피해자임에도 나를 외면했던 그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가질 만큼.
나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모양이다. 그건 내 욕심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내가 사람들에게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저 한쪽만 봐달라고 하는 관계는 완전할 수 없다. 어쩌면 그 시기의 나는 내가 힘듦을 온몸으로 표현해 왔는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든 하면 나를 좀 봐줄 거라고,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상대방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나를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이 나를 받아주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이 지쳐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마음이 아픈 이유는 지금의 내가 여전히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글만 쓰고 있는 굉장히 초라한 사람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벌써 회사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데 말이다.
내가 원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었을 때, 정말 내가 행복하긴 할까. 목표를 이루고 나서의 나는 좋은 일이 생겼으니 그다음엔 다른 안 좋은 일들이 닥치는 건 아닌지 항상 겁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해냈다는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도 없었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나에게 닥친 시련들을 막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예정되어 있었던 그 일들이 그저 아무 일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에게 온 그 시련들을 내가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만으로도 나는 소중한 사람임을 나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여전히 느리고, 여전히 눈치 없고, 여전히 생각이 많은 나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 많은 일들을 겪었어도 여전히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나에게 고맙다.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간이 더 필요한 나를, 게으른 나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온전히 받아주기로 했다. 이기적이면 이기적인 대로, 생각이 없으면 생각이 없는 대로 그저 내 모습을 인정하고 보여주는 것.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이 그런 내 모습이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