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대하여
화를 낸다는 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나는 적어도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갑자기 화를 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고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좋은 의미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굉장히 여유롭고, 멘탈이 단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나를 자존심이 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리액션도 보통 여자들과는 달라서 반응이 없거나 별일 아니라는 식의 무뚝뚝한 표현을 하기 일쑤였다.
내가 화내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에 있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반지하에 20년 넘게 살면서 항상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싸웠던 부모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때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예쁜 지갑이 사고 싶어서 문방구를 돌고 돌아 드디어 원하는 지갑을 찾아 집으로 돌아갔을 때, "니가 그렇게 돈이 많아?"
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돌아온 날에는 "너 때문에 병원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알아?"
성추행을 당하고 경찰서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온 날에는 "동네창피해서 말도 못 해"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부모님을 괴롭힌 나쁜 아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나를 얌전하고, 자신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어 했다. 내 생각이나 의견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내가 피해자고 뭐고 슬퍼하거나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부모님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싫었던 것 같다. 그냥 나를 탓하는 게 더 편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누군가는 나를 가엾게 봐주길 바랐다. 그래서 그 기억들은 그냥 잊어야 했다.
성인이 된 나는 항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우선이었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기분 나쁠까 봐, 나를 미워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내가 화를 내기 싫어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조차 뭔가 크게 잘못한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 안에는 내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하고 판단하는 어린 시절의 아빠 같은 사람이 한 명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화를 낸다는 것은 그 사람과 연락을 끊기를 각오하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큰 각오를 하고도 화를 내고 나면 나는 자책하기만 했다. '내가 너무 심했던 거 아닌가?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을 방치하고 살아왔다. 어떻게든 참고 버텨내려고 했다. 더 이상 마음이 견딜 수 없게 되자 몸에 이상이 오고, 35살에 암환자로 또 다른 시간을 견뎌야 했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닥칠까를 생각했었다. 나를 탓해야만 후련해지는 그 힘든 시간들을 나는 또다시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였다. (사실 주변사람이 나 때문에 힘든 걸 보는 게 더 괴로웠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그저 힘들다고만 표현했던 내 감정들을 이제는 부끄러움, 수치심, 서러움, 억울함 등 다양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관찰하고, 내 마음이 어떤지 나에게 물어보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여전히 화를 내는 것보다는 조근조근 할 말 다 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