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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Jan 27. 2024

생성형 AI는 인류의 사고방식 마저 뒤흔들고 있다

현실vs비현실이 의미 없어진 이유 

특이점은 왔을까?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제시한 ‘특이점’ 이론에 따르면, 2045년에는 비생물학적 지능의 총합이 생물학적 지능의 총합을 넘어선다고 한다. 약간의 비약을 섞어 해석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얘기다. 2005년 그의 예측 이후 인류는 2014년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 그리고 2023년 Chat 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출시로 특이점으로 나아가는 주요 변곡점들을 겪었다. 


현재 시점에서 대중의 생성형 AI에 대한 인식 및 수용은 대체로 그 결과물을 신기해하면서도 인공적인 것으로 한계를 명확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 “역시 자연스럽지는 않다”, “아직은 사람이 하는 것이 낫다”며 선을 긋는 반응이 다수이지만, 그중에는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쏟아내며 새로운 콘텐츠 영역을 개발하며 독특한 미감을 선보이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에서 주목할 점은, 생성형 AI의 결과물들이 역으로 우리 인류의 사유 영역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 등장한 비현실, AI 필터 


작년 여름을 휩쓸었던 지브리 필터는,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의 일상적인 공간을 단 한번의 클릭으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화 느낌으로 바꿔주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틱톡 앱을 깐 사람들은 지브리 AI 필터를 사용하며 자신의 일상 속의 공간을 시뮬라크르, 즉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복제 공간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지브리 AI 필터의 등장 이후, 사람들의 현실 세계에는 해리포터, 디즈니와 같은 21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또다른 시뮬라크르로서 등장하며 SNS 플랫폼을 뜨겁게 달구었다. 

틱톡에 있는 지브리 필터는, 나의 모습과 배경을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바꿔준다.

한편 작년 겨울에는 네이버 자회사 SNOW에서 출시한 AI 이어북 필터가 공전의 인기를 누렸다. 자신의 얼굴 사진을 열댓장 넣으면 90년대 미국 대학생 느낌으로 합성해주는 이 필터는, 유료 구매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연예인들이 직접 사용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매진되어 구매가 불가능한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 후 AI 필터는 웨딩사진, 올드머니룩 등 트렌드를 저렴한 비용에 실현하는 형태로 확장되었고, 이전까지 타인의 사진을 소비하고 선망하던 사람들은 한발 나아가 직접 자신의 모습을 시뮬라크르로 구현하기까지 이르렀다. 

네이버 자회사 SNOW의 사진/동영상 편집앱 EPIK에서 출시한 AI 이어북 필터.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현실이 따분하고 평범하며 교환 가능한 것이기에 오히려 시뮬라크르 속에서 교환 불가능한” 일종의 가치를 찾아낸다며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그는 <느슨하기 철학하기>라는 그의 저서에서 마루야마치라는 일본의 도시 방문기를 꺼낸다. 특징적일 것이 없는 그 소도시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셰익스피어의 고향 마을과 생가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컨트리파크와 그곳을 열정적으로 안내하는 남성을 보며 이 개념을 떠올린다. 이 남성이 “실재하는 마루야마치가 평범했기에 테마파크에 향토사적 열정을 쏟았”던 것처럼, 지브리와 해리포터 필터를 자신의 일상에 적용하는 사람들 역시 AI 필터가 불러오는 시뮬라크르적 비현실 요소를 자신의 현실에 도입하여 그 구분자를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A현실과 B현실의 융합이 탄생시킨 C라는 비현실 


생성형 AI로 만든 콘텐츠를 올리는 한 유튜브 계정에는 해리포터의 등장인물들을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패션쇼 런웨이에 선 모습으로 재해석한 1분이 조금 넘는 영상이 올라왔다. 또한 등장인물들은 해리포터 세계관의 유명한 대사들을 - 이를테면 “You’re a wizard, Harry”를 “You’re a Balenciaga, Harry”라고 하거나, “Avada Kedavra”를 “Avada Balenciaga”라는 등 - 유머러스하게 변형했다. 해당 영상의 댓글판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해리포터 대사를 발렌시아가로 바꾸는 유희의 공간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puqLy87-3A

해리포터와 발렌시아가가 만나 탄생시킨 영상.


임재범이 부르는 뉴진스의 Hypeboy, 상상만 해보았던, 혹은 상상도 못해보았던 음원들이 생성형 AI와 함께 ‘AI 커버’라는 명목 하에 SNS에 퍼지기 시작한 것도 작년부터다. 처음에는 유명인 혹은 목소리가 특이하고 개성있는 사람을 여러 음원에 입혀보며 단순 신기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시작된 이 콘텐츠 유형은,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와 음원의 조합을 찾아다니며 감상하는 팬덤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성장했다. 프레디 머큐리가 부르는 IU의 ‘내 손을 잡아’라니, 한 번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ksv08A3-dE

"뉴진스의 하입보이는 과일 소주라고 한다면 임재범의 하입보이는 20년산 발렌타인이다" (영상의 댓글 중 발췌)

AI 커버가 인류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상상의 영역, 불가능의 영역에만 존재했던 것들을 가능의 영역, 현실의 영역으로 생성형 AI가 치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생성형 AI 콘텐츠가 신기함의 감정을 유발하는 데 치중되어있다면, 이런 AI 커버류는 그를 뛰어넘어서 평소 바랐던 가수와 음원의 조합을 직접 만들고 그것을 진짜인 양 감상하는 데 있다. 약간의 과장을 섞는다면 이제 인류는 더이상 가능/불가능의 판단을 할 필요가 없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얼마나 잘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현실을 아득히 초월해버리는 비현실


Chat GPT의 DALL-E에 원하는 이미지를 텍스트로 입력하면, 그럴듯한 이미지 조합을 생성해낸다. 예를 들어 ‘산을 오르는 남녀가 갑자기 야생 동물을 만나서 놀라는 광경을 그려줘’라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이 내용을 이미지로 변환시켜 보여주는 식이다. 거기에 야생 동물에 대한 세부 키워드를 입력하며 수정을 요청하면, 그 수정 내용을 반영한 이미지를 후속 생성해낸다. 이 과정은 끝이 없다. 산을 오르는 남녀에 디테일을 붙일 수도 있고, 갑자기 다리가 9개 나 있는 새가 활공하는 광경을 추가해달라고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플레이브와 메이브는 모두, 버추얼 아이돌이다. 플레이브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본캐’에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입혀 애니메이션으로 캐릭터화된 멤버들을 선보인다면, 메이브는 그 태생부터가 본체가 없는 AI다. 콘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본체로 표상되는 실연자가 존재하지만 그 어떤 팬도 본체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 대신, 팬들은 아이돌 각자의 캐릭터와 매력 요소, 멤버 간 케미스트리, 아이돌 세계관의 떡밥 회수 과정과 성장 드라마를 소비한다.”


https://www.kocca.kr/trend/vol36/sub/s21.html

https://www.youtube.com/watch?v=7H7daeeZ_bo

MBC 음악중심에 출연(?)한 플레이브의 무대 영상.

“언어는 존재의 집 (하이데거)”라고 언어학자들은 지적해왔다. 예를 들어 ‘유니콘’이라는 단어는 언어로서는 존재하지만, 물리적으로는 실재하지 않는 동물이다. AI가 만들어내는 콘텐츠 역시 물리적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언어로서 존재하는 것에 한 발 나아가 시각화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유니콘’과 같은 실체 없는 개념들을 짧게는 5분이면 뚝딱 그럴듯한 이미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현실을 거뜬히 뛰어넘는 비현실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유 역시 그 둘을 구분짓기보다, 그를 넘나들며 새로운 미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가 되었다. 

생성형 AI로 만들어낸 유니콘 커플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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