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길 위에 김대중> 톺아보기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상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운 이 영화가 오락 요소 없이 누적 관객수 10만 명을 돌파했으며, 자발적인 상영회와 단체 관람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과 SNS 여기 저기서 영화와 더불어 주인공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돌아보는 기획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글에서도 그 열기를 이어 영화를 리뷰하되, 결코 평범한 삶을 살기 싫은 사람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비범함을 3가지로 정리했다.
하나, 실패를 계속해도 집념을 꺾지 말라
어릴적부터 머리가 명석했던 김대중은, 20대에 부산에서 해운회사를 차리고 사장이 된다. 그렇게 성공한 젊은 시절을 보내던 김대중은, 이승만 정권에 환멸을 느끼며 정치에 뛰어들고, 놀랍게도 2~3차례 연이어 낙선한다. 오죽하면 파이낸셜 리더스라는 경제지에서는 이 영화를 리뷰하며 기사 제목을 '낙선전문가 김대중'이라고 못박았을까. 그렇게 낙선에서 낙선만을 거듭하던 도중, 김대중은 드디어 장면 정부의 눈에 띄어 대변인이 된다. 하지만 그 영광도 잠시, 박정희와 전두환 등 20여 년에 걸친 독재 정부 집권 기간 중 밉보여 총 6년의 옥중 생활과 약 10여 년의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18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넬슨 만델라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러나 저러나 견딜 수 없는 삶인 것은 마찬가지다.
http://www.fnleaders.net/news/articleView.html?idxno=10193#0ALS
영화에는 그의 녹취록이 간간히 나온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졌다면 저는 실패한 인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것을 이루겠다는 목표에서 돌이켜 보았을 땐 의미가 있는 삶이었다.” 낙선과 투옥, 망명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호화로운 국회의원이나 고위관리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국에 민주주의를 반드시 일궈내겠다는 60년 간의 정치적 신념, 아니 집념이 결국 그를 사실상 한국 민주주의 아버지로 완성시켰다. 성공한 20대 청년 사장이 낙선 몇 차례 후 쓴맛을 견디지 못하고 해운회사로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반복된 감옥과 망명생활에 지쳐 정치를 빠르게 은퇴했다면 또 어땠을까. 평범한 사람이 되기 싫다면, 김대중과 같은 독기어린 집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익혀라
한겨레는 영화 <길 위에 김대중>에 대한 리뷰에서 이희호 여사의 인터뷰 녹취록을 불러온다. "남편처럼 쉼 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처음... 감옥은 대학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 기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6년 동안의 감옥 생활 동안 탐독했던 고전 명저가 분과별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가 이희호 여사를 통해 구한 책은 철학, 신학, 정치, 경제, 역사, 문학 등 다방면에 얽혀 있었고, 특히 러시아 작가의 작품들을 좋아해서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기사에서는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하루 10시간 넘게 책을 읽으며 총 감옥 생활의 절반인 2년 6개월 동안 무려 600권의 책을 읽었다고 소개했다.
https://english.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33580.html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옥 생활 중 외국어 공부도 병행했다. 그가 48세에 늦깎이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일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이희호 여사와의 옥중 서신에 따르면 프랑스어까지 독학했다고 한다. “오늘 차입한 책은 당신의 부탁대로 <신종합세계지도>, <불란서어 4주간>, <신불어소사전>입니다. 불어는 나도 전에 두 학기 배운 일이 있으나 발음이 특이하고 모든 것이 남성·여성의 성별이 있어 그것을 구별해 알기에 무척 복잡합니다. 오늘 차입한 책들은 독학하기에 좋다 합니다.” 옥바라지 생활이 힘들다지만, 홍대와 신촌을 오가며 프랑스어 책까지 구해다줘야 하는 이희호 여사의 5년은 특히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투옥 생활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건강 악화를 계기로 전두환 정부는 그에게 미국 망명을 권유한다.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를 마지못해 수락한 김대중은 미국에 가자마자 워싱턴을 드나들며 그곳의 정치인들과 교류하고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연설 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친다. 영화에서는 미국 방송사 ABC의 Nightline이라는 당시 유명한 토론 프로그램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연하여 사회자와 통역 없이 대담을 나누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망명 시절 미국 정치인들과 교류하고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던 것이 그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셋, 절대 안 되는 것 빼고는 타협하라
평범한 사람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 투옥과 망명, 연금 생활을 거듭했다면, 이념적 순수성에 매몰되면서 점차 외골수적 기질이 강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 <길 위에 김대중>에서는 그의 무서우리만치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권이 1965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시도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한일회담 결사 반대 입장과는 다르게 그에 찬동했다. 한국의 진보 정치 진영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굴욕 외교로 인식하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김대중이 얼마나 실용적인 노선을 취했는지 체감할 수 있다.
몇 년 후 박정희 정권은 장기 독재로의 포문을 열기 위해 3선 개헌 카드를 꺼내고, 김대중은 또다시 결사 투쟁의 명분주의 노선을 택한 신민당과는 궤를 달리하며 타협안들을 제시한다. 아마도 20대 해운회사를 설립했던 경험이 그를 이념적 투사보다는 현실에 뿌리를 둔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략적 타협에 능했던 그도, 박정희 정권이 막상 3선 개헌을 밀어부치자 가두 시위에 앞장서고 대중을 상대로 연설하며 민주주의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되, 가장 중요한 원칙에서는 비타협적으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 이것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을 비범하게 만들었다.
"나는 당시 당수였던 유진오씨에게 이를 받아들일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지방자치제를 조속히 추진하도록 주장했다. 이때 나의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그 뒤의 정세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신민당은 거의 불가능한 선거의 전면 무효와 재선거를 요구하며 물러나지 않았다. 이는 한국 야당의 불행한 체질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결국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국회에 출석하는 비참한 상태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으로>, 108~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