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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Sep 15. 2024

요즘 애들이 예능을 소비하는 방법

과몰입 vs 밥친구 vs 사골 스트리밍

이전 글에서 요즘 애들이 드라마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다. 이어서 이번 글에서는 MZ세대의 K-예능 소비 방식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한다. 12~16부작으로 틀이 정형화 되어있는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회차 수부터 장르, 게스트 여부 등 ‘예능’이라는 대분류로 묶여 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하다. 특히 요즘 <핑계고> <살롱드립> 등 유튜브 오리지널 예능의 출연으로 더욱 시장이 파편화 되어있는 모양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프로그램 공급자의 입장이 아닌, 예능을 소비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5가지 소비 패턴을 유형화했다. 글을 작성하기 위해 20대 대학생 20명에 대한 심층 FGI 리서치와 함께, 각 유형별 대표 콘텐츠에 달린 댓글 및 커뮤니티, X 반응 등을 동시에 수집했다. 글의 내용은 FGI 대상들이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음슴체’로 표현하였으며, 중간중간 적절한 댓글 반응 등을 통해 교차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알고리즘형 - SNS 짤, 혹은 논란에서 시작된 흥미로 예능을 소비하는 유형
ex) <더 인플루언서> <좀비버스> 
  


이 유형은 예능 프로그램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 혹은 인지는 했으나 시청을 결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알고리즘에 지속 노출되어 결국 시청을 결정하는 유형이다. 대표적으로 언급된 예능은 <더 인플루언서>와 <좀비 버스>가 있었는데, 특히 <더 인플루언서>의 경우 화제의 인플루언서들의 쇼츠와 릴스가 고조회수를 획득한 것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런칭한 주에 여캠BJ 과즙세연과 방시혁 의장의 이슈가 터지며 ‘논란’으로 인해 정주행한 케이스들이 많았다. 주요 반응은 아래와 같다. 


“논란거리가 생기면 쇼츠/카드뉴스에 도배되어 궁금해서 찾아보게 됨. <더 인플루언서>의 경우 여캠BJ 과즙세연이 방시혁과 해외에서 같이 사진 찍히며 이슈가 되었고, 예능 속 과즙세연의 발언과 행동에 대한 부정 반응으로 연결되면서 해당 출연자에 대한 궁금증에 정주행을 시작함. (넷플 1위 찍어도,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나와도 안 보고 있었던 예능이었다...)”


“자발적으로 보는 예능 외에는 X에서 클립으로 화제되는 장면이 있을 때, 논란이 되는 장면이 있을 때 전후 상황이 궁금해서 처음부터 찾아보게 됨. 예를 들어 <더 인플루언서> 캐디와니가 심으뜸에 참교육 당하는 장면이나, 과즙세연과 이사배가 1:1로 붙는 장면 등에 노출되며 찾아보았음. <좀비버스>는 덱스 활약상 클립으로 보기 시작함.” 


이들은 입소문과 화제성에 조금 더 민감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예능 취향이 아니더라도 인스타그램과 X 등 플랫폼에서 콘텐츠에 노출되거나, 주변 지인들이 재밌다고 추천하면 시청을 결심하는 유형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로열티는 높지 않다고 할 수 있으며, 각잡고 TV나 OTT로 정주행을 하기 보다는 유튜브 등 SNS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 듯 하다.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 <좀비버스> 관련 쇼츠가 알고리즘에 떠서 팔로워 높은 유튜버들의 서바이벌, 덱스의 멋진 모먼트가 궁금해서 시청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초반 30분에서 취향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이탈. (전개가 느리거나 뇌 빼고 보기에 너무 감정적인 소모를 일으키면 이탈함.”
<더 인플루언서>는 X에 올라온 클립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짤로 소비를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과몰입형 - 출연자 감정선, 서사에 몰입, 다른 시청자들과 감상을 공유하는 유형
ex) <환승연애>, <여고추리반>   


이번 유형은 앞선 ‘알고리즘형’가 달리 프로그램에 대한 로열티가 굉장하며, 혼자 시청하기보다는 팬덤 내 다른 시청자들과 같이 감상을 나누는 유형이다. 주로 <환승연애> <연애남매> 등의 연애프로그램이나, <대탈출> <여고추리반> 등 추리 프로그램이 이렇게 팬덤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본방을 보기 전까지는 SNS 플랫폼을 통한 소비를 자제하는 편이라고 한다.  주요 반응은 아래와 같다. 


“대탈출, 여고추리반, 데블스플랜 등은 OTT에 접속 후 각잡고 봐야하기 때문에 여유가 생기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보는 편. BUT 선호하는 추리 예능과 깔이 달라지면 (과도한 연기, NPC 몰입 방해 등) 시청 꺼려짐. 특히 출연진 조합이 별로라고 생각 되면 몰입 자체가 되지 않아 소비 안 함 (ex 미스터리 수사단)”


“나는 솔로, 하트시그널과 같은 연애 프로그램은 평소 재미있게 봐서 뉴스기사/SNS를 통해 론칭일과 프로그램명 공개되는 대로 무조건적 시청. 유튜브 클립을 보기 전에 바로 OTT로 시청, 웬만하면 의리로 끝까지 시청하나 전개가 루즈하거나 편집/구성 완성도가 낮아서 짜칠 경우 드물게 이탈 또는 2배속 시청함.” 


예상컨대, 프로그램 방영 후 커뮤니티와 X 등에서 감상평으로 가장 불타 오르는 유형이 바로 이 유형일 것이다. 올해 들어 찰스엔터, 승헌쓰, 하말넘많 등 과몰입 예능 프로그램을 리뷰하며 메가 크리에이터로 급성장한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팬덤의 화력이 엄청나게 쎈 편이고 후기도 매우 길게 작성하는 편이다. 관찰한 바로는 ‘미친다’ ‘맛도리’ ‘도파민’ ‘개같이 기대’ ‘광광 울었다’ 등 감정의 순도가 아주 높은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대표적인 과몰입 콘텐츠 리뷰 크리에이터 <찰스엔터>.

  

과몰입형 프로그램 중에서도 특히 연프에는 '감정선'이 중요하다. 출연자도, 시청자도. 

 

 


    밥친구형 - 무해한 힐링 예능을 소비하는 유형 (자매품 ‘잠친구’)
ex) <언니네 산지직송>, <알쓸신잡>, <핑계고>


이 유형은 다소 기가 약한(?) 시청자들의 소비 유형이다. 앞선 1~2번 유형이 도파민과 과몰입의 끝판왕이라면, 이번 유형은 집에서 밥을 먹거나 할 때 틀어놓는 예능을 찾는 경우로, 잔잔하고 소소한 연출과 출연자들의 무해한 매력을 소비하는 유형이다. 소위 ‘밥친구’라고 불리는 이런 예능은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감상하기보다는,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잠시 딴 짓도 하는 등 일종의 라디오나 백색소음처럼 소비된다. 


“집에서 항상 예능을 틀어 두는데 뚝딱뚝딱 요리하고 먹고 치우고 하는 반복적인 과정이 ASMR처럼 느껴져서 틀어놓고 잘 때도 있음. 교양예능을 좋아해서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듣기도 함 (알쓸0잡시리즈)”


“핑계고, 살롱드립과 같은 유튜브 예능을 주로 소비, 작위적이지 않고 편안함에서 나오는 유머가 있어 밥친구로 아주 좋음. 이런 예능은 채널 구독 후 게스트 상관 없이 틀어놓고 이동 간에 보거나 밥먹을 때 봄.”


주로 요즘 2030여성층에서 많이 보이는 소비 패턴으로, 이들은 무해한 캐릭터와 편안한 재미의 예능을 추구하며 답답하거나 위기가 닥친 상황, 혹은 출연진들의 작위적인 캐릭터성이나 소위 '억텐'을 선호하지 않는다. 

“힐링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 등)은 출연진에 따라 소비 여부 결정. 장르와 맞지 않는 게스트, 출연진이 있을 때는 시청하지 않음. 효리네 민박은 다시 돌려볼 정도로 좋아하는 예능 (일반인과 함께하는, 순수한)”



    구작 사골 스트리밍형 - 이미 시청한 ‘아는 맛’ 구작을 재탕 삼탕하는 유형
ex)  <무한도전> <1박2일> <런닝맨>


한 해에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의 개수만 보면, 드라마보다는 예능이 훨씬 많은 편이다. 게다가 장르와 내용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 새로운 예능은 특별한 접점이 없는 이상 그 예능의 구성과 매력을 알아가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예능을 찍먹해보기보단, 이미 보장된 구작 예능을 사골처럼 스트리밍하는 소비자들도 상당히 많다. 이런 시청자들이 보통 SNS 알고리즘에 지속 노출되었을 때 1번 유형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시작하게 되기도 한다. 

 

“예능의 경우 경쟁작들이 많기 때문에 괜히 새로운 예능을 보기보다는 기본적인 재미가 보장되어 있는 무한도전이나 과거 매운맛 시절 라디오 스타 구작들을 더 애정하는 편. OTT를 통해 예능 재탕 많이 하며 (신서유기, 무한도전, 강식당, 더지니어스) 같은 깔의 새 예능 나온다 하면 관심 상승.”


“신서유기, 꽃할배, 꽃청춘, 서진이네, 산촌생활 등 여행 프로그램 계속 돌려 보는 편이며 대탈출, 여고추리반, 크라임씬 같은 추리 예능도 선호함. 무한대로 재생해놓고 보는 편임”


“꾸준히 보는 예능은 [무한도전] mbc 오분순삭,끌올 채널 / [런닝맨] sbs 런닝맨 공식 채널 / [대탈출] 디글 채널 통해 클립으로 소비. 라디오처럼 계속 틀어놓고 보는 편.”  


    인물 팬덤형 - 선호하는 출연진이 나오는 회차만 시청하는 유형
ex) <유퀴즈> <핑계고> <살롱드립>   


요즘 범람하는 게스트 토크쇼 유형의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가 주로 이에 해당하는 소비 패턴을 보인다. 출연자 매력도에 따라 팬덤 뿐 아니라 일반 대중 중에서도 그에 호감을 가진 시청자들이 해당 출연자가 게스트로 출연했다는 정보를 접하고 회차를 소비하게 되는 패턴이다. 


“최근 유행하는 예능이거나 선호하는 출연자가 나오면 무조건 시청하는 편. TV예능, 특히 방영 중인 프로그램은 쇼츠에 뜨는 것만 보다가 기대되는 게스트 있는 편은 OTT에서 찾아서 보는 편.”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앨범 홍보, 작품 홍보하러 나오는 유튜브 예능이 접근성이 좋아 자주 보게됨(살롱드립, 핑계고, 채널십오야). 다만 너무 날 것의 워딩을 사용할 경우 잘 보게 되지 않음(노빠꾸 탁재훈).”


마지막으로 20대 대학생 20명의 FGI를 실시하며 발견한, 2024년 현재 예능이 풀어야할 숙제를 제시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이들 대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예능의 경우 OTT나 심지어 TV를 찾아가서 볼만큼 적극 시청 의향이 있었지만, 그것이 아닌 대부분의 경우 유튜브 클립 등을 통해 콘텐츠를 보는 경우 역시 ‘콘텐츠를 시청’한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방송국과 OTT들은 SNS 영상을 마케팅의 용도로만 인식하고, 그 영상을 보았다고 해서 ‘콘텐츠를 시청’했다고 분류하지 않는다. 이렇게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시청에 대한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이 간극을 메우는 일은 예능 공급자들이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다. 


“티비에서 방영하는 작품은 거의 찾아보지 않고 릴스나 유튜브에 재밌는 장면만 잘라서 뜨면 그것만 시청하는 편. 최근에는 골목식당 빌런 모음집 숏츠로 보고 있음”


“유퀴즈, 꼬꼬무, 서진이네2, 티처스, 한블리 등 풀버전으로 보는 몇 개 제외, 예능은 주로 클립으로 소비”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를 통해 화제가 된 예능 클립들은 유튜브에서 편집되어 올라온 영상으로 찾아보는데, OTT에서 풀버전을 시청하기보다는 화제가 된 구간의 롱클립을 찾아서 시청하는 편”
인터뷰이 중 한 명은 최근 "골목식당 빌런 모음집을 숏츠로 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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