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여름을 간직한다는 것의 의미
나는 가능한 시즈널리티를 담은 기록을 남기려고 애쓰는 편이다. 여름에는 여름의, 겨울에는 겨울의 기록을 남기면 계절을 지나는 나의 변화를 느낄 수 있기에. 그 중에서도 작년 여름의 글은 1년간 나를 지지한 소중한 유산이다.
이번 방학을 하나의 구문으로 표현하자면 ‘작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인생에서 얻을 행복의 원천을, 열정의 근원을, 능력의 발원지를 찾기 위해 애썼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방학이 내가 보낸 방학들 중 가히 최고라고 말하고싶은데, 그건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 애썼기 때문이며, 가장 감정적으로 평안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나는 가장 정제되지 않은 나의 무의식을 알아주려고 노력했고, 들쑥날쑥한 생각들의 이유를 찾아주려고 노력했다. 나는 가장 날것의 나를 마주하고 그런 나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노력했던 이번 방학이 참 좋다.
2022년 기록 中
<작은 인생에 열기를 채우는 일>
나는 이 스물 둘의 글을 종종 펼쳐보는 편이다. 나를 잘 알고, 그래서 내 마음도 잘 알고. 또힌 그 마음이 담긴 열정을 실천하면서 그 시간들을 열기로 채워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담긴 글이었기에. 당시 글의 제목을 지으며 <작은 인생에 열기를 채우는 일> 로 작성할지, <인생에 작은 열기를 채우는 일>로 작성할지 고민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작은 인생에 열기를 채우는 일>로 결정되며 내 인생은 작더라도, 내가 채우는 열기는 절대 작지 않다는 의미를 담아내고 싶었기도 했다.
작년의 여름글을 보며 가을과 겨울, 그리거 돌아오는 봄까지 나는 나의 스탠드포인트를 점검하고 마음을 정비했다. 글자글자마다 확신이 묻어있는 이 당시의 글은 나에게 ‘여름의 태도’를 명확하게 전한다. 탁 트인 시야로 보이는 맑은 하늘과도 같은 투명한 글에 나는 몇 번의 헐떡임에도 결국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마음에 여름을 간직한 채로 나는 어떤 것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었다.
여름에 대해서는 수많은 아름다운 말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뜨거운 태양, 땀을 훔치며 녹음을 올려다보는 모습, 그러면서도 바다를 상상하고, 또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담담하게 걸어나가는 태도는 여름을 연상하게끔 한다.
“한겨울에라도 우리는 언제나 마음 속에 한여름을 조금이라도 간직해야 한다.“
데이비드 소로
하지만 실은, 더위에 지쳐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처럼 늘어지는 모습도 내게는 여름 연상키워드이다. 종종 그렇게 늘어지는 몸과 마음을 경험하고 쉽게 상체를 일으키지 못하기도 하는 나라서 여름을 마냥 예쁘게 설명하고 싶지만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예쁘지 않다는 말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예쁘지 않고 아름답다는 것은, 내게는 어딘가에 숭고함을 간직한 미의식과도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잘 세팅되어있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올 여름에 내가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바로 부족한 나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마음을 잘 알아주기로 했다. 완벽을 바라지만 완벽하지 못한 나를 대견하게 여겨주기로 했다. 그렇게 빨랫줄에 널려 인간미를 뚝뚝 흘리는 나를 긍정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보송보송하게 말라 결국 햇님 냄새를 품은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올여름, 나는 담담한 전진을 배웠다.
7월에는 다짐한 일을 반드시 현실로 만들기 위해, 8월에는 주어진 현실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그러나 초조함이나 불안함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품고서도 정지하거나 후진하지 않게 된 나를 회고하며 나는 한 단계 또 성장했음을 느낀다. 불안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앞을 보고, 내가 쓰러지지 않게끔 스스로를 다독이는 나만의 루틴을 배워갔다. 글을 쓰고, 쿠키를 먹고, 운동화를 챙겨신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나를 칭찬하는 말을 떠올리고,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엔 블루베리와 우유를 먹고,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웃는 것처럼 사소하지만 힘이 되는 매일을 보냈다.
나는 그래서 마음에 여름을 간직하기로 했다.
지쳤다면 그 마음을 보듬어주되, 도리어 내가 나를 연민하지는 말 것. 무너질 것 같다면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되, 도리어 내가 무너질 가능성의 자리를 만들어주지는 말 것. 뜨거운 태양, 땀을 훔치며 녹음을 올려다보는 모습에서 여름을 떠올릴 것. 그러면서도 바다를 상상하고, 또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담담하게 걸어나갈 것. 때로는 장마가 찾아오더라도, 인간미를 뚝뚝 흘리는 나를 긍정할 것. 그러다 보니 보송보송하게 말라 결국 햇님 냄새를 품은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