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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아 Mar 05. 2023

어른이 되고 비지찌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3월 새 학기 시즌이라고 해서 따뜻한 봄이 벌써 찾아온 건 아니다. 항상 새 학기 시작은 칼바람 같은 꽃샘추위에 벌벌 떨며 시작했던 것 같다. 추우면 찌개 같은 음식들이 당기는데 최근에는 유독 비지찌개가 주기적으로 생각난다. 어렸을 때 엄마가 비지찌개 하면 나는 입에 대지도 않을 정도로 싫어했다. 콩도 아닌 두부도 아닌 이상한 식감은 혀끝에서 거부반응을 일으켰고, 밍밍한 듯 니맛도 내 맛도 아닌 비지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를 못 했다. 국도 아닌 찌개도 아닌 자작함, 빨간색도 아니고 하얀색도 아닌 그 어중간함. 비지찌개는 나에게 늘 애매한 음식이라고 여겨졌던 것 같다.

  비지는 콩을 두부로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영양 덩어리라고 한다. 식이섬유도 우엉의 두 배나 되고 담백하기에 다이어트에도 좋고 장을 깨끗하게 해서 대장암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결혼하고 남편이 비지찌개를 좋아하는 것 같아 한 번 끓여봤는데 의외의 감칠맛과 콩의 깊은 맛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이제 입맛도 성숙해졌구나.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두부 전문점에 가면 비지는 늘 서비스로 나오고 두부집에서 두부사면 비지는 서비스로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급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었다.

  참기름 두르고 돼지고기 달달 볶고 김치 조금 볶다가 멸치육수 조금 넣고 비지 넣고 끓여서 국간장, 액젓, 등등으로 간 맞추고 먹으면 진짜 너무 고소하고 담백하다. 역시나 아이는 이상한 식감이라고 거부했다. 언젠가 이 녀석도 엄마 생각하면서 비지찌개를 흰쌀밥에 슥슥 비벼먹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맛도 달라진다. 그리고 생각도 삶의 태도도 달라진다. 음식에 대한 나의 태도가 달라졌듯이 내 성격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좀 더 유연해지는 것 같다. 비지처럼 담백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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