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게으름은 병적이다. 뭐 얼마나 게으르기에 병적으로까지 표현할까 싶으시겠지만, 그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래서 기묘한 동거가 내 자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나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라는 것이다.
눈치채셨거나 공감하실 수 있겠는데 나의 mbti 유형은 isfp다. 우리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누워서 세상 걱정 다 짊어졌음에도 좀처럼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에 내가 가장 크게 낙담한 것은 내가 늘 산책하고 집에 오는 골목 어귀에 있는 상가에 새 상점이 들어섰을 때였다. 그곳은 사거리에 위치해 있고, 편의점을 끼고 있으며 큰 아파트 단지를 흡수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가장 큰 장점은 아직 우리 동네에는 이렇다 할 카페가 없었다. 그 자리는 마치 태생이 '나는 카페 자리입니다'라고 적혀있는 것처럼 너무나 카페가 들어서기에 적합했으며 작년 여름쯤 저가 카페가 들어섰고 대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한 다섯 발자국 옮기면 비슷한 저가 카페가 들어섰으나 보란 듯이 더 잘되고 있으니 가게 사장님의 결단이 적중했던 셈이다.
.... 그 자리에 카페를 구상하고 있던 한 사람을 매우 잘 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다. 나는 우리 동네에 신혼 때부터 도합 10년을 살고 있고 그래서 이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그저 편히 들락일 수 있는 카페를 원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 상가는 몇 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자리는 너무나 좋으나 세가 비싸다는 둥, 주인 등쌀에 못 버티고 나간다는 둥 흉흉한 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몇 번을 곱씹고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자라엔 카페가 제격이었다.
자, 일단 그래서 나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베이킹을 좀 전문적으로 다시 배우자, 그러려면 어리던 두 딸들을 대신 좀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고 , 그전에 내가 기동성이 좋아야 금방 귀가해서 아이들 데려오니까 그래, 면허를 따자라는 황당한 마인드맵을 전개했다. 완벽주의답게 나는 한 번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연수도 서너 번 나갔는데 마지막 시간에 크게 사고가 날 뻔했던 것을 남편의 기지로 가까스로 피하고 나서 나는 영영 차 핸들조차 건들지 않고 있다.
그다음.. 그러면 나는 레시피 연구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에 그동안 내가 자신 있던 빵들을 한 달간 구워보자는 황당한 계획을 세웠다. 여러 번 말하지만 나는 완벽주의다. 가장 자신 있던 케이크 휘핑이 말썽이었다. 계속 휩을 할수록 그것들은 너무 떡이 졌고 맛은 느끼했다. 오버휩이 돼서 그렇다는 걸 나는 아주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럼 바리스타 자격증이라도... 학원을 알아보니 주말만 수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인 데다 이미 정원마감이라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카페 창업이 과연 나에게 옳은 일인가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이 답도 없고 티도 안 나고 얻은 거라곤 운전 면허증 한 장이 다인 소동은 그 좋은 자리에 예정했던 것처럼 들어선 카페가 오픈하는 날 화려하게 정리가 돼버렸다.
나는 원래가 생각을 무척 많이 하고서야 실행에 옮겨 늘 시간이 부족하고 늘 나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께는 죄송스러운 이야기나, 이 브런치 작가도 홧김에 응모했는데 덜컥 작가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물론 브런치에 내 이름 석자로 글을 남기겠다는 결심은 무려 작년 말부터 있어서 글은 몇 분 안돼서 완성이 되었지만 늘 이런 식인 것이다. 내 글이 몇 편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생각해서 나는 나 같은 사람은 면허 못 딴다는 남편 보란 듯이 한 번에 운전면허도 땄고 어느 정도 몫 좋은 가게나 위치 정도도 적중했음을 깨달았고 내 생각이 황당한 망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에도 좀 많이 늦었을 뿐.
퇴근길에 이 모든 고민을 한방에 해결하려면 역시 복권 당첨만큼 확실한 건 없다는 생각에 복권방에 갔다가 한심한 생각에 앞서 말한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아, 물론 복권은 구입했다. 이번만큼은 누구보다 빠르게 내린 결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