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도 계속 비가 오락가락했다. 그래서 긴 트레일은 피하고 캠핑장 근처에서 시작할 수 있는 Vernal fall을 가 보기로 했다. Vernal fall은 mist trail의 중간에 있는 폭포로 해발 1200미터에 있는 97미터 높이의
폭포다. Bridalveil과 Yosemite 폭포와 함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폭포 중 하나다. 또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파워풀하고 넓은 free-falling 폭포 중 하나로 꼽힌다. free-falling 폭포란 폭포물이 절벽 위나 바위를 전혀 접촉하지 않고 공중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말한다. Vernal fall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위험한 폭포 중 하나이기도 한데 1924년부터 17명이 이 폭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Vernal fall 트레일 입구가 캠핑장에서 1킬로미터 안 되는 거리에 있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Vernal fall이 올려다 보이는 footbridge까지는 입구에서 왕복 3 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지만 폭포 정상까지는 4.8 킬로미터 정도가 걸린다.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footbridge까지 가기로 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 몽환적인 느낌이 났다. Footbridge까지는 트레일이 포장이 잘되어 있어 걷기가 편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트레일 오른쪽의 가파른 비탈 아래로 흐르는 Merced river의 물이 많이 불어 있고 유속도 매우 빨랐다. 비탈로 떨어지면 바로 강물에 빠지게 되니 낙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길 오른쪽에 돌담을 설치해 놓은 것 같다.
이윽고 vernal 폭포가 보이는 footbridge에 도착하니 저 멀리 위에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폭포 정상을 갔다가 하산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올라가는데 힘들었지만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 가보라고 한다. 비가 내리지는 않아서 일단은 올라가 보기로 했다. 조금 가다 보니 경사가 급하고 좁은 돌계단이 계속 나왔다. 내려오는 사람들 말이 여기부터 정상까지 쭉 이런 급경사 계단의 연속이란다. 그러고 보니 Vernal fall까지의 트레일 난이도가 '중상'(moderate to streneous)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비가 와서 돌계단들이 다 젖어 있어 매우 미끄러웠다. 깎아지른 절벽에 기둥을 박아 돌계단을 설치했는데 이 계단을 만든 이 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계단을 절벽에 만들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를 오를 수 있었겠나. 공원 입장료를 더 많이 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폭포가 가까워지니 물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멍할 정도다. 비가 와서 폭포물이 불어나 더한 것 같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인지 폭포에서 공중으로 떨어지는 물인지 구분이 안 간다. Vernal fall이 free-falling 폭포라서 폭포에서 공중으로 분사되는 물방울이나 습기가 더 많은 것 같다. 올라가는데 바로 내 앞에서 내려오던 여성 한 명이 돌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내려오는 게 더 위험하다. 하이킹 부츠를 신지 않고 그냥 운동화를 신거나 정장 구두를 신고 올라가는 한 동양인 남성도 보였다. 보는 내가 더 걱정스럽다.
수직의 절벽을 깎아 만든 길
드디어 폭포 정상에 도착하니 뜻밖의 넓고 편평한 공간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아래로 물이 떨어지며 폭포가 시작된다. 100미터 돠는 폭포를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찔해서 뒤로 얼른 물러났다. 안 그래도나이가 드니 높이에 민감해지는데 거대한 폭포니까 더 겁이 난다. 귀를 때리는 폭포 소리 때문에 더 무섭다. 가장 최근에 여기 정상에서 일어난 사망 사고는 2011년에 일어났다. 세 명의 관광객이 펜스(아래 Vernal fall 정상 사진에 찍혀있는)를 넘어가, 펜스 바깥에서 사진을 찍다가 세 명 모두 폭포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고 한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이다. 그걸 목격한 사람에게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도대체 펜스안과 바깥의 사진 차이가 뭐길래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여기서 대부분 사람들이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간식을 먹는다. 또는 잠시 머물다가 다음 목적지인 4마일 떨어진 Neveda fall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폭포 정상으로 오르던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는데,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는 걸 보니 무척 부러웠다. 아들이 말하기를 자신이 지금까지 먹었던 샌드위치 중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란다. 아마도 꿀맛일 테지. 이렇게 힘들게 올라와서 폭포의 장관을 즐기며 앉아서 먹는 샌드위치가 어떻게 맛있지 않을 수 있겠나. 나도 음식을 좀 챙겨 올 걸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rain storm이 올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밤에는 눈도 온다고 해서 하산길을 서둘렀다. 내려가는 길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는데 제법 많이 와서 비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비옷을 입으면 무릎 아래 시야가 가려지기 쉬우므로 내려가는 돌계단에서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반 정도를 내려오니 이제서야 올라가는 한 가족을 만났다. 대 여섯 살 되는 조그만 남자아이가 울면서 엄마 손에 붙들려 올라가고 있었다. 비도 꽤 내리고 벌써 다섯 시가 넘었는데 그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어린아이가 울면서 올라가니 신경이 쓰였다. 그 나이의 아이에게는 날씨가 좋아도 힘든 길이다. 지금 올라가기에는 너무 늦었는데 비도 꽤 내리기 시작했고 저녁에 비가 많이 온다고 했는데 말이다.
Vernal fall 정상
Vernal fall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내려 차에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스노 글러브와 브러시등을 챙겨 왔어도 지금까지 별로 쓸 일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사용을 했다. 다음 목적지인 lassen-volcanic national park이 500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어서 서둘러 캠핑장을 떠났다. 올 때와는 달리 Northside drive로 나왔다. 도로 양쪽의 무성한 나무들이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는데 그 나무 가지들 사이로 빛이 쏟아진다. 정말 동화 속 나라, 눈의 왕국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예뻐 천천히 운전을 하고 가는데 왼쪽으로 차들이 여러 대 주차가 되어있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Yosemite valley view라고 불리는 전망 포인트였다. 터널 뷰보다 요세미티 밸리를 훨씬 가깝게 잘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차를 주차시키고 내려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또다시 빛의 향연이다. 원래의 아름다운 풍경에 빛으로 필터링을 하니 환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공원을 떠나기 전 또다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