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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준 Feb 03. 2023

급할수록 돌아가라_1

취 준 생



목 늘어난 흰 티에 떡 진 머리를 한 그는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전기장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루의 시작을 알리듯 지원했던 채용 사이트들을 하나하나 들어가 보며 합격 여부를 확 인했다. “이번엔 느낌이 좋았어” 자신을 응원하며 기대에 찬 눈 빛으로 조회 버튼을 눌러보지만, 애석하게도 모니터엔 “불합격” 세 글자만 띄어질 뿐이다. “아.. 여긴 붙을 줄 알았는데..” 나름 하향지원이라 생각하며 넣은 곳마저 불합격을 알리자, 그의 일 말의 자신감은 물에 젖은 솜사탕처럼 금세 사라졌다.


                                                 

                                  “하..미치겠네, 이젠 어떡하지?” 



경영학과 4학년... 이제는 졸업하면 학생의 타이틀이 아닌 백수의 타이틀을 가지게 되는 그는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질이 아니면 양으로 밀어붙인단 마음으로 수십 개의 이력서를 넣고 있었지만, 연락은 쉽사리 오지 않았고 점점 지쳐갔다. 그도 그럴 것이 4년이란 시간 동안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그에 맞는 준비와 경험이 있을 리 없었고 당연하게도 회사에서 원하는 스펙에 한참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왜 이리 복잡할까? 분명 머리로는 부족한 걸 알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선 뽑아만 준 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 있는데 왜 못 알아보지? 라며 애꿎 은 인사팀을 원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불합격으로 다시 채용사이트를 기웃거리던 그때, 그의 눈에 다홍빛 배 너 하나가 들어왔다.



                          ' 한국디지털 디자인 협회 / 디자인 과정 모집 '



한국과 협회와 주는 묘한 신뢰감 때문이었을까? 그는 홀린 듯 다홍빛의 그 배너를 눌렀고, 한동안 까먹고 있었던 미술에 대한 열망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거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고, 당연히 미술 관련 직업을 가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남자가 무슨 미술이야? 미 술 해서 뭐 해 먹고살래?라는 주변의 걱정 아닌 걱정 때문에 인 문계에 진학했고, 문과를 거쳐, 취업이 잘 된다는 경영학과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회계, 세무 등 관심이 있는 것도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취업이 잘 되는 과이니 “굶어 죽진 않겠 지”라는 마음으로 그 당시 선택을 한 것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린 지금! 그는 “그래 어차피 준비된 거 하나 없는데, 지금이라도 좋아하 는 일을 해보자”라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솟아났다. 그렇게 그는 쓰고 있던 자기소개서를 잠시 멈추고, 협회에 수강생 신청서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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