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턴
남자 나이 스물일곱,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은 평탄했다. 너무 늦은 나이도, 너무 빠른 나이도 아니었기에 스스로를 탄탄대로라 생각했으며, 하나라도 알려주며 한시라도 그가 한 명의 몫을 해내길 기다려주는 선임들을 보고 있자면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로 신입이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었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가이드에 글씨와 이미지만 바꾸는 작업을 계속하게 되자, 그는 자신이 꿈꿔왔던 디자이너가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버텨야 저 선임들처럼 회의도 참석하고 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작업할 수 있을까? 몇 년을 더 굴러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프로모션 페이지를 담당하던 선임 디자이너 한명이 출산휴가를 가게 되어 그 자리를 신입사원 중 한 명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객관성을 가지고 뽑기 위해 회사에선 실제 기획서로 2주 안에 시안을 제출하는 “실무 디자인 테스트” 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눈앞에 보이는 커리어의 급행열차 앞에 그와 그의 동기 모두는 팀 변경을 희망하였다. 물론 지금 하는 업무와 병행하며 자투리 시간에 제작하는 일이었지만 힘들겠다는 생각보단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눈에 띌지 그의 눈빛은 입사 이래로 가장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먼저 디자인할 때 제일 중요하다 배운 타깃층을 생각했다. 지금 회사가 2030을 타깃으로 생각하니깐 통통 튀고 새로운 시안을 내야 하나? 아니면 기존처럼 3040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해야 하나? 수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그의 결론은 이것으로 났다.
진짜 타깃은 2030도 3040도 아닌 시안을 보고 적임자를 택할 50대의 차장이란걸 그는 눈치챘다. 그때부터 그는 차장이 컨펌한 그동안의 초안과 히스토리를 살펴보며 선호하는 컬러와 레이아웃을 정리했고, 2주 후 프로모션 디자인팀이 되었다. 콘셉트에 맞춰 전체 페이지를 그려내는 일은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다.
기획자가 1까지 생각하고 준 기획서에 그의 아이디어와 손이 더해서 2와 3을 만드는 것은 정말 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 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질투심 많은 한 동기와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 했다. 몇 안 되는 남자를 관리자로 만들기 위해 팀을 이동시켰다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출퇴근 시 선임들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잘 보이기 위해 한다며 좋지 않은 말을 만들어냈다. 물론 스스로에게 자신있었던 그는 이건 실력으로 된 것이고, 사회생활하면 서 인사가 문제가 될 정도라면, 오히려 그녀의 인성이 바닥이라 생각해 무시해 버렸지만, 가끔씩 자신이 하고 다니는 말을 모르게 하기 위해, 그에게 친한척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앞뒤가 너무 다르다” 라며 한마디 해주고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