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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색시계 Dec 13. 2023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게 변했다

<환생>, 윤종신 (1996)


3번의 자취 경험 중 가장 좁고 안 좋았던 곳에 머물렀던 시기, 매일 추운 겨울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 했던 시기 저녁 9시에 누워 잠들기 전 이 노래를 들었다.

우선 인트로에서... 그렇게 자유분방한 콧노래를 부를 수 있나.

예쁘게 소리를 내기보다는 정말 신날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흥얼거림 같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그대 만난 후로 난 새사람이 됐어요
우리 어머니가 제일 놀라요​

항상 가사 첫 줄을 들으며 생각했던 것 같다. 다시 태어나는 기분은 뭘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은 언제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나도 언젠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극적으로 기분 좋은 반전을 경험해 볼 수 있나? (어쩌면 해보았을 수도 있지만)

근데 마지막 줄도 웃기다. '다시 태어난 것 같다'라고 강력하게 선언해두고, '내 모든 게 달라졌다' 그리고 '새사람이 되었다'라며 거창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놓고는, 정작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고 대뜸 '우리 어머니'를 표현한다. 갑자기 찌질함을 기반으로 한 친근함이 치고 들어온다.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어머니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남자, 어머니가 보고 놀랄 정도면 이전에 얼마나 한심해 보이는 삶을 살았던 거야?


​우선 아침 일찍 깨어나
그대가 권해줬던 음악 틀죠
뭔지 잘 몰라도 난 그 음악이 좋아요
제목도 외기 힘든 그 노래​

그리고 역시나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고, 아주 사소하고 세세한, 그러나 그래서 생생한 부분을 짚어가기 시작한다. 아침 일찍 깨어나(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아마 이전에는 늦잠을 많이 잤나 보다) 제목도 모르지만 그대가 추천해 준 노래를 듣는다. 아침에 일찍 깨자마자 이미 상대방을 찾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음악'은 좋아하긴 하나 아직은 잘 모르는 '그대' 그 자체, 혹은 '그대'의 취향, 취미, 이야기, 속마음 등등의 의미를 함께 띠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할 때도 안된 샤워를 하며 그 멜로디를 따라 해요
늘 힘들었던 나의 아침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나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씻기도 잘 씻는단다. 샤워하면서 '그대'의 노래도 흥얼거린다. 일어나기, 씻기, 모두 귀찮고 힘든 일상의 한 부분인데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그 사소한 일상이 즐거워졌다. 일상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 그러나 그 태도의 변화가 곧 모든 것의 변화다. 그것이 이 노래가 말하는 환생이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에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

오 놀라워라 그대 향한 내 마음
오 새로워라 처음 보는 내 모습
매일 이렇다면 모진 이 세상도 참 살아갈 만할 거예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공감대를 팍팍 형성해두고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놀랍다', '처음 보는 내 모습이 새롭다'라고 하니 그 말이 상투적이지 않게 다가온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매일 이렇다면 모진 이 세상도 참 살아갈 만할 거예요'이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사랑에 빠진 바보처럼 헤벌쭉 한 이 남자도 세상을 마냥 쉽게 살지는 않고 있나 보다. 그리고 지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해서 매일 이런 기분을 느끼리라고 확신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현재의 행복을 통해 미래를 살아가려는 힘을 찾아볼 뿐이다.

세상이 모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내가 좀 변하면 어느 정도 살아갈만하지 않을까라는, 꽤나 현실적이면서 낭만적인 말처럼 들린다.

전철 안에 예쁜 여자들
이제는 쳐다보지 않아요
몇 정거장 지나면 그댈 만나게 돼요
차창에 비친 내 얼굴 웃네요​

그리고 다시 거창한 세계에서 살아있는 현실로 내려오기.

폼 나는 자동차도 아니고 전철에서 몇 코스 남았는지 세보면서 설렘을 느끼기.

괜히 유리를 거울삼아 즐거운 자기 모습도 한 번 봐주고.

관심도 없던 꽃 가게에서 발길이 멈춰져요
주머니 털어 한 다발 샀죠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데​

꽃도 그냥 사는 게 아니다. '주머니 털어'사야 한다. 진짜.. 이 노래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분명 어떤 '허술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완벽하지 않은, 남들에게 내세우기보다는 숨기고 싶은 영역에 가까운 부분들을 슬쩍슬쩍 드러내며 이 사람과의 거리감을 확 좁혀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남이 사랑타령하는 게 아니라 진짜 현실에서 내가 잘 아는 나와 밀접한 사람이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는 듯한 친근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정말 '환생'이라 할만하다. '관심도 없고', '아무 날도 아닌데', 꽃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니.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오 놀라워라 그대 향한 내 마음
오 새로워라 처음 보는 내 모습
매일 이렇다면 모진 이 세상도 참 살아갈 만할 거예요

오 놀라워라 그대 향한 내 마음
오 새로워라 처음 보는 내 모습
매일 이렇다면 모진 이 세상도
참 살아갈 만할 거예요​​

계속 듣다 보면 주문 같다.

지금 이 기쁨을 통해 모진 이 세상을 헤쳐가겠다는 주문.

사랑은 보잘것없는 일상을 얼마나 새로운 세계로 끌어올리는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게 변했다.

지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깜찍한 주문.

그래서 이 노래가 나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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