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마량리 동백숲, 신비의 바닷길 여행 feat 주꾸미도다리축제
하늘이 완전 무채색이다. 흑백 사진의 한 장면 같은 몽환적인 색채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교대역에서 출발했다. 오랜만에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떠나니 마음이 오색풍선이다. 꾸물꾸물하니 사흘 굶은 시어머니 얼굴 같은 날씨지만 터질 듯한 설렘을 누를 수는 없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충남 서천 마량에 있는 동백숲이다. 마침 주꾸미 도다리 축제를 한다고 하니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떠났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어떤 보약보다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봄에는 역시 주꾸미와 도다리쑥국이 최고이다.
여행 작가가 되려는 야무지면서도 원대한 꿈을 안고 모인 동호회원 4명과 함께 떠난 여행이다. 이번 여행 후에 글 1편은 무조건 쓰고 말겠다는 각오로 떠났기에 눈빛이 모두 초롱초롱하다. 모임은 여러 번 했지만 소통은 거의 하지 않던 작가님과 짝꿍이 되었다. 3시간여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살아온 일생을 터는 대화 삼매경 속에서 시간은 빨리 감기를 한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바다내음이 나는 걸 보니 무창포해수욕장에 도착했나 보다. 떠날 때의 흑백 텔레비전 같던 하늘은 어느새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총 천역색 칼라 텔레비전이 되어 있다. ‘저 바다에 누워’를 외치며 냅다 달려갔다. 그런데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하다. 봄나들이의 설렘으로 날씨도 내 마음 같으리라 착각했나 보다. 패딩 하나 안 걸치고 봄 점퍼와 얇은 바지 하나, 그 흔한 스카프도 목에 두르지 않았으니 마음과 달리 몸이 자꾸만 움츠러 든다.
고즈넉한 어촌 마을에 작고 신비한 바닷길이 열리는 무창포이다. 서해안에 최초로 개장을 한 무창포 해수욕장은 봄에는 주꾸미 도다리 축제, 여름에는 신비의 바닷길 축제, 가을에는 전어 대하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무창포항 방파제 등대 빨간색 하나와 하얀색 하나가 쌍으로 다정하게 서 있다. 그곳으로 바닷길이 열리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물때가 맞지 않아서 우리는 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일부 사람들은 완벽한 복장과 장비를 갖춘 다음 바닷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현지 주민들이 생업에 종사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 같았다.
갯벌에서는 꼬막 캐기 체험이 한창이었다.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갯벌을 파헤치며 꼬막을 캐고 있었다. 현지 주민 같으신 할머니께서는 꽤 묵직하게 노다지를 캐고는 여전히 주름진 손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마냥 신나게 갯벌을 파헤치기만 하면서도 연신 깔깔대는 웃음에 숨어있던 꼬막이 화들짝 놀란다.
나는 도무지 체험하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기피까지 한다. 내 평생 갯벌 체험이나 봄나물 캐러 다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단 진흙 내지는 모래가 손과 발에 온통 도배질하는 것이 너무 싫다. 물에 바닷물이 닿는 것도 싫어서 바다 수영도 아주 어릴 적 빼고 철이 들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바다는 바라보는 것이 좋고 체험보다는 그냥 투어가 좋다. 그런 내 눈에도 꼬막을 캐는 사람들의 몰입하는 광경이 꽤 재미있어 보인다. 여행길 떠나는 나를 붙잡고 늘어지며 할머니 가지 마! 를 외친 손주들과 함께 체험을 한다면 제법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보면, 세월 따라 취향도 바뀌고 자연의 어루만짐이 그리워질 나이가 되었나 보다.
어디선가 풍악이 울려서 한달음에 따라가보니 ‘주꾸미 도다리 축제’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무대 위에서는 각설이로 분장한 남녀 한 쌍이 북과 꽹과리를 쳐대며 각설이 타령을 시원하게 뽑고 있었다. 격렬한 추임새에 비해 청중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자 초로의 아저씨 한 분이 거금 배춧잎 2장을 공연자에게 투척한다. “아이고야 얼굴도 잘생기신 분이 이렇게 귀한 돈을 주시다니요.” 너스레 속에 함박웃음이 만들어 낸 눈가의 주름이 사뭇 슬프기까지 하다.
패키지여행의 최대 단점은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차에 타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관람은 포기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돌린다. 아뿔싸! 근처의 주차장에는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가 안 보인다. 가이드께 전화했더니 앞으로 한참을 더 가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차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내려왔건만, 하늘에 바다에 갯벌에 꽹과리 소리에 취해서 먼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잊었다.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동백숲으로 달린다. 배꼽시계는 이미 울렸건만 주차장에 식당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마량진 포구로 버스를 돌린다. 이 정도도 미리 계획하지 않았나 하는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꾹 참는다. 10여 분 달리니 마량진 포구의 축제 행사장에 도착했다. 무창포의 맛있는 냄새가 유혹하던 많은 음식점이 아른거리며 식당이 보이지 않는 주차장에서 우리는 잠시 멘붕이 왔다. 주어진 시간 안에 후딱 밥을 먹어야 하는데 사람은 인산태이다. 무조건 직진하여 음악 소리가 나는 곳에 도착하니 행사장에 잡다한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남미 느낌이 나는 남자 둘이 이국적인 차림과 악기로 행사장임을 알리는 작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향의 가락을 연주하는 진지함이 애달프다.
제일 처음 군고구마 냄새로 시작하여 떡볶이, 어묵, 핫도그 등이 우리의 발길을 잡는다. 각개전투를 하기로 작정한다. 각자 먹고 싶은 주전부리하기로 하고 순간 해체한다. 나는 붕어빵 제작공장 앞에서 멈춘다. 어릴 적에 먹던 국화빵 일명 풀빵이 동그랗게 오와 열을 맞춰 나를 보고 손짓한다. 덜컥 2 봉지나 산다. 배가 고파서 이성을 잃었는 데다가 동행과 나누어 먹기 위함이다. 한 봉지를 숨도 쉬지 않고 털어 넣었다. 닭강정 앞에서 다른 분이 또 한 봉지를 사서 길거리에서 순식간에 해치운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송편, 옛날과자, 생강젤리 등 시식 코너와 매식을 번갈아 하며 시장통을 빠져나오니 이미 배는 꽉 차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행사장의 시장을 빠져나오자 주꾸미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가게는 모두 만석이라 웨이팅은 기본이었기도 했지만, 우리는 모두 이미 너무 달렸기에 주꾸미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다. 결국 주꾸미는 각자 서울에서 사 먹기로 하고 편의점으로 간다. 주전부리가 늘 그렇듯이 배는 빵빵한데 뭔가 허기진 듯한 느낌적인 느낌? 컵라면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기로 한다. 역시 이 맛이야. 뜨끈한 국물과 함께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MSG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끼며 원샷한다. 주꾸미 축제가 열리는 서천까지 와서 편의점 컵라면이라니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시간은 벌써 3시 30분인데 이번 여행의 주인공인 동백꽃은 보지도 못했다. 다시 10여 분 달려서 마량 동백숲으로 간다. 동백을 볼 수 있는 최북단 지역이 서천 마량이라고 한다. 서천 팔경 중의 한 곳인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5백여 년 수령의 동백나무 85주가 8,265제곱미터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드디어 동백을 만나러 간다. 해가 저물면서 더욱더 차가운 날씨에 몸을 한껏 웅크렸지만 동백을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단전에서 열감이 느껴진다. 입장료 거금 1,000원을 지불한 후에 입장이 가능하다. 초입에서부터 동백나무가 아름드리 우리를 맞이한다. 만개했으리라 예상했는데 쌀쌀한 날씨 탓인지 꽃봉오리도 간간이 눈에 띈다.
사실 동백은 내가 그리 좋아하는 꽃은 아니다. 물론 싫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이 위쪽 지방이다 보니 가까이에서 동백을 볼 수 없기에 늘 아련한 그리움의 꽃이다. 여수 오동도의 동백을 영접하고는 동백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지만 그리 호감이 가는 꽃은 아니었다. 단 하나 나무에 달려 있을 때보다 땅에 떨어진 낙화가 더 아름다운 유일한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핏빛 몸매에 노란 수술을 품고 함초롬이 떨어진 낙화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었다.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우아함의 끝판 왕인 목련은 질 때는 세상 지저분할 수가 없다. 반면에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그저 그랬던 동백이 낙화하여 땅 위를 뒹굴 때는 세상 어느 꽃보다 선명한 붉은빛 자태가 섹시하기까지 하다. 누군가 땅 위에 낙화를 모아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마침 동백의 꽃말이 ‘누구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이기에 하트는 더 강한 여운으로 각인되었다. 오늘 사랑 많이 만났다.
뜨는 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는 낙조가 더 황홀하듯이 자기의 임무를 다한 후 속절없이 지는 꽃이 더 처연하도록 빛날 수 있다. 젊음이 졌다고 애달파하지 말자. 살아낸 세월만큼이나 살아 낼 세월도 소중하다. 가 버린 청춘이 애달프다면 서천 마량 동백숲에 가자. 그곳에 가면 우리네 인생길과 닮은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