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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의 악몽

죽음의 예비고사

by 정유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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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수능일이 밝았다.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바로 오늘이다.

모두 수능의 고개를 넘었기에 전 국민의 응원이 공중에서 하이 파이브 하는 날이다.

집안에 입시생이 없으면 학교가 휴교한다던지 출근을 1시간 늦게 하는 조금은 여유로운 날이지만, 입시생이 있는 집은 초비상 긴장상태로 하루 종일 허리가 아프고 손이 다 닳도록 빌고 또 비는 날이다.


'예비고사'시대는 80년 11월 4일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고, 81년 11월 4일을 시작으로 '학력고사'시대가 막이 열렸다. 그러다 93년 8월 20일에 수능 1차, 93년 11월 11월 16일 수능 2차를 치르면서 '수능시대'로 돌입했다. 그 이후 수능의 세부 사항은 정권에 따라 정책이 바뀌었다.


나는 79년도에 '예비고사'를 봤다. 타임머신을 타고 예비고사를 보던 악몽의 그날로 날아갔다.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그 전날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직할시로 나갔다.

그곳의 여관에서 마치 수학여행 온 것 같지만 절대 수학여행은 아닌 1박을 했다.

그런 절차부터 나에게 악재였다.

나는 멀미를 심하게 하는 아이였고 버스를 타고 가는 1시간 30분 동안 이미 초주검이 되었다.

다음 날 시험에 대한 부담감으로 긴장했기에 여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푹 자지 못했다.

드디어 D-day.

어제의 악재는 순재일 만큼 나의 컨디션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날씨가 꾸물꾸물 저녁 굶은 시어미니상을 한 저기압이었으니 멀미에는 최악의 날씨였다.

어제의 여파때문인지 차를 타지 않고도 멀미가 계속 남아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속은 계속 메슥메슥 토할 것 같았다.

초인의 정신력으로 시험장에 들어섰다.

1교시, 국어와 한문은 내가 잘하는 과목이었고 아직은 버틸 체력이 남아 있었기에 온전하게 시험을 치렀다.

2교시, 수학은 썩 잘하지는 못해도 못하지도 않는 실력이었지만 나는 이미 책상에 엎어져서 바로 앉을 힘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 한바탕 토를 한 후라 다리는 후덜 거리고 식은땀이 나며 얼굴이 백지장이 되었다.

확실하게 아는 문제는 풀고 그다음부터는 답을 대입해서 역으로 푸는 이상한 방식으로 겨우겨우 시험지를 제출했다.

여관에서 싸 주는 도시락을 입에도 대지 못하고 점심시간이 지났다.

3교시, 영어는 망했다. 문과임에도 영어는 영 자신이 없던 과목이었다. 나의 병세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기에 사고가 멈추었고 생각이라는 걸 하기가 싫었다. 그때부터 찍기 신공에 들어갔다. 어서 빨리 시험지를 제출하고 교실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시험지를 제출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웁스!

4교시, 바닥을 치면 올라올 일만 있는지 다 쏟아 내고 나니까 기운은 없지만 정신은 조금 깨어났다.

그다음부터는 정상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실력을 발휘하며 그럭저럭 시험을 치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고통으로 점철된 시험 시간의 마지막 종이 울렸을 때, 나는 그 아이를 떠올렸다.

'나 좋다고 따라다니던 동창생 남자애에게 시집이나 가야겠다.'


그 이후 수능일만 되면 속이 울렁울렁 입덧하는 임산부가 된다.

오늘도 영 속이 좋지 않다.

이것도 트라우마인가?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화살기도를 날릴 것이다.

'하느님, 부처님, 모든 신들께 빕니다. 수험생들이 긴장하지 말고 컨디션을 잘 유지하여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도록 그들에게 지혜를 주세요. 아는 것은 물론이고 모르고 찍은 것도 다 맞히는 신공을 주세요. 그래서 원하는 점수를 얻고 꿈을 이루는 첫걸음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수험생을 지켜 주세요."

나와 같은 수험생이 나오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리고 혹시라도 실력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더라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기를.

지금은 인생 최고의 좌절 같지만 긴 인생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고.

그 찰나는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고 인생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고.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고 앞으로 무궁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고.

'예비고사'의 악몽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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