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판단력이 빠르고 임기응변에 능한 편이지만, 가끔 제동이 걸릴 때가 있다. 대체로 화가 나거나, 서운한 일이 있거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연속될 때 그렇다. 이럴 땐 차분히 글로 생각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말로 할 땐 감정이 앞서 하고 싶은 말들이 엉키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일엔 두서가 없어도 되지만, 내가 불리한 일일수록 차가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작 해야 할 말은 못 하고 밤에 이불킥하기 딱 좋다.
지금 겪고 있는 상황, 그 과정 중 내가 더 고심해야 하거나 버려야 하는 생각 그리고 앞으로 내가 취해야 할 태도 등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나열하지만, 자체적 탈고를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수정한다. 내용을 더하거나, 빼기도 하고, 생각의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횟수로 치면 최소 5번, 고민의 깊이에 따라 1일~3일이 걸리는 듯하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남들보다 늦게 2022년 회고를 시작했고, 인스타그램 피드에 쓸 말을 정리하기 위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할 말이 많아졌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기질이 발동해 초안만 작성하고 메모장을 닫았다.
그러던 중 지인을 만나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초안 일부를 보여주었는데 누가 새해 목표를 그렇게 구구절절 쓰냐며 이 정도 스토리텔링이면 브런치나 시작하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인스타그램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문이었으니 지인의 반응이 놀랍진 않았다.
브런치는 처음이라 발을 들이기 전 어떤 생태계인가 궁금해졌다.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았다. 직업이 광고쟁이인지라 수익 창출이 되지 않는 플랫폼이라... 멈칫했다. 네이버 블로그는 애드포스트 광고 수익도 있고, 업체로부터 원고료를 받거나 키워드 노출 인센티브를 받는데 글 쓰는 노동의 대가가 없다니! 이왕 하는 거 네이버가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그동안 접했던 브런치 포스팅은 대부분 업무 관련 전문 지식이었으니 일기나 써 내려갈 요량으로 가벼운 마음이었던 나는 '작가 신청'이라는 허들도 달갑지는 않았다.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너무 거창한 아무말쟁이일 뿐인데... 브런치가 자신의 유저들을 프리미엄화 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에 발 들이기로 첫 번째 이유는 내 글쓰기는 노동이 아니라 취미라고 정의 내렸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서 난잡한 내 생각 조각들이 퍼즐처럼 짜 맞춰진다면 그게 내 이익이겠거니. 혹시 또 모르지. 이런 아무 말이 모여 제법 멋들어진 콘텐츠가 되어 유퀴즈에 나오는 작가가 될지도!
두 번째 이유는 성의 없는 공감과 댓글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노출 로직에 맞추는 게 아닌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가면 된다.
술이 좀 들어간 금요일 밤에 노트북 앞에 앉아 2시간 정도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토요일 새벽이 되어 작가 신청을 완료했다. 생각보다 제출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영업일 기준으로 검토가 되니 주말이 지나면 결과가 나오겠지? 그렇게 큰 품을 들이진 않았지만 막상 다 끝내고 나니 혹시 심사에서 탈락할까 봐 긴장이 되더라.
월요일 오후, 작가 합격(?) 알림을 받고, 1월의 마지막날 저장해 두었던 첫 글을 발행했다. 그렇게 작성된 내 첫 번째 브런치 글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