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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맨 Jun 09. 2024

확률의 미로에서 길 찾기

‘켈리 공식’이 준 삶의 전략

내가 바늘구멍 같은 확률들을 뚫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case 1)
늦은 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 했다.
아무도 없는 승강장은 스산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옆을 돌아보니, 두 사람이 싸우면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싸움의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싸움이 격해져 가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많았다면 모른척할 수 있었을 만큼 그 사람들과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더니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걸어왔다.
무서운 기세였지만 이유를 알지 못하는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몰랐다.
심장은 터질 것 같은데, 몸은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근처까지 왔던 그 사람은 계단을 타고 자신이 내려왔던 개찰구를 향해 다시 올라갔다.
case 2)
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과 단 둘이 타게 되었다.
나는 14층, 그 사람은 15층을 눌렀다.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섰고, 그 사람은 안쪽 코너에 섰다.
엘리베이터가 12층쯤 왔을 때 갑자기 그 사람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내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느껴졌다.
뒤를 돌아볼 수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공포가 엄습했다.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도달하는 시간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14층에 도착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갔다.
그러면서 흘긋 뒤를 돌아봤는데, 코너에 있던 그 사람이 나와 똑같이 앞쪽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하지만 곧이어 그 사람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렀고, 유유히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


위 case들의 결말은 사뭇 허무하다. 하지만 저 이야기의 절정에서 내가 느낀 공포에 공감할 수 있다면, 단지 민망한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쏟아지는 끔찍한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마주해 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기억 한두 개쯤은 뇌리를 스쳤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몇몇의 경험들에서 나는 타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도 예측해 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그려내게 되는 순간, 내가 매번 무시무시한 확률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피부로 와닿는다. 그 확률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내가 그 확률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때문일 것이다.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렇게 나 스스로를 수동적인 존재로 치부할 때쯤, 우연히 한 영상을 접했다. 그 영상은 투자나 도박에서 이익을 최대로 낼 수 있는 자본 할당 전략인 ‘켈리 공식’에 대한 것이었다.


’켈리 공식‘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판돈의 2배를 주고, 뒷면이 나오면 판돈의 0.4배 만을 돌려주는 도박 게임이 있다. 전 재산이 100만 원을 가진 사람이 게임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도박판의 특별한 조작이 없다면 동전의 각 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1/2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내가 돈을 얻을 확률과 잃을 확률 또한 1/2라고 착각한다. 물론 게임을 한 번만 한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두 번만 진행해도, 돈을 잃을 확률은 3/4, 얻을 확률은 1/4로 잃을 확률이 3배가 더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게임을 1000번이라는 많은 횟수만큼 반복한다고 해보자. 조작이 없다면 개인적인 운을 고려해도 앞면은 470~530번 사이로 나와야 한다. 최악의 운을 가진 사람도 앞면이 1000번 중에 최소 470번 나와야 하고, 최고의 운을 가진 사람도 앞면이 1000번 중 최대 530번 밖에는 안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 재산 100만 원 모두를 게임에 투자한 사람이 앞면이 530이 나온 경우 돈을 얻을 확률은 3.2*(10의 -28승)으로 0에 수렴한다. 앞면이 530번이나 나오는 가장 운이 좋은 경우에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J. L. Kelly라는 사람이 판돈을 얼마를 거냐에 따라 이 결과가 아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밝혀냈다. 켈리 공식에 따르면 앞면이 나올 경우 자산 변화는 (1+x)가 되고, 뒷면이 나올 경우 자산이 (1-0.6x)가 된다. 계산에 따라 이번엔 전 재산 100만 원 중 1/3만을 투자한다고 해보자. 1/3을 x에 대입하여 계산하면 가장 운이 좋지 않아 앞면이 470번 밖에 안 나온 경우에도 그 결과는 22,850,689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 공식이 도출되는 과정이나 세부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같은 1000번의 게임을 했는데, 전 재산을 걸지 않고 1/3의 재산을 거는 것만으로도 내가 돈을 벌 확률을 아주 큰 차이로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1/2의 확률을 가진 도박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도 내가 결과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켈리 공식에서 얻은 깨달음은 내가 가지고 있던 인생의 무기력함에 있어서도 해답을 주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타인의 악의, 그로 인한 사건/사고에서도 내가 확률을 높이고 낮출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없는 저녁에 움직이는 횟수를 줄일 때마다 위험의 확률은 감소할 것이며, 미리 갖춰둔 호신용품은 공포와 패닉의 정도를 줄일 것이다.


만약 나처럼 인생이 마치 도박 같다고, 바늘구멍 같은 확률들을 뚫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기억해 보자. 우리는 그 안에서 매번 통제력을 쥐고 있으며, 그 사실을 수학이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확률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력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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