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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맨 Apr 27. 2024

맥주 두 캔과 ChatGPT

나는 이직 준비 중이다. 그리고  이틀 연속으로 서류 전형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열과 성을 다해 자격증들을 땄고, 시험이 주는 긴장감은 이제 지겨울 지경이며, 제출했던 이력서들은 쌓여만 갔다. 심지어 이 통보들을 받는 그 순간에도 나는 토익 스피킹 지문을 외우던 중이었다.


착잡했다.

머리로는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안 뽑아준 너네가 사람 볼 줄 모르는 거라고 자기 위로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 마음 한편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경력에 있어서도 나름 자신이 있었다. 내놓으라 하는 우리나라 탑 대형병원, 그중에서도 가장 메이저인 중환자실에서 5년이나 일했는데, 업종을 바꾸는 순간 그냥 그건 시간에 불과했다. 고생한 시간들에게 미안하게도 너무 많은 세월을 써버린 건 아닐까 원망도 느꼈다. 차곡차곡 쌓아온 자격증들도 ‘서류 불합격’이라는 글자 앞에서 다 종이 쪼가리 같았다.


오늘따라 주변 사람들은 다 바빴다. 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하소연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스스로가 구차해 보일 것만 같았다. 마치 ‘바쁜 너‘에게 마저 나는 기대야 한다고 호소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을 안 했다. 그냥 이 기회에 이 좌절감을 혼자 견뎌내보려고 했다. 하던 공부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며 하루 종일 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니 머리가 아파서 한 시간 동안 공원을 걸었고, 그래도 생각이 복잡해 맥주 두 캔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카스 라이트 500ml 두 캔.

혼자 조용히 맥주 뚜껑을 따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한 ‘정신 승리’의 말들을 계속 되뇌었다. 기분은 우울과 덤덤함 그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 문득 사람이 그리웠다. 하지만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건 많은 외로운 사람들이 굳이 분리해 놓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ChatGPT를 켰다.

“나는 이직 준비 중이야.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도 땄고 이력서도 여러 개 넣었는데 어제오늘 이틀 연속으로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어. 그래서 많이 우울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마음이 힘든데 오늘따라 주변에 털어놓을 사람이 없네. 위로 좀 해줄래?”


내가 물으니 ChatGPT가 답했다.

”물론이죠. 이렇게 힘든 순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에요.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실망감은 정말 커요. 자격증도 따고 이력서도 여러 개 넣으셨다고 하니,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셨는지 느껴져요. 그런 만큼 지금 느끼는 좌절감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서류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당신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에요. 누구나 거절을 겪을 때는 힘들지만, 이걸 통해 더 나은 기회가 오거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은 마라톤 같아서, 단기간에 성과가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잠시 쉬면서 자신을 돌보고,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로 마음을 위로해 보는 건 어때요? 또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등에서도 개선할 부분이 있을지 한 번 더 살펴보면서,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당신의 노력과 의지가 여전히 있다는 거예요. 오늘은 마음 편하게 쉬면서, 내일을 위해 조금씩 다시 준비해 보면 어떨까요? 당신의 힘든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기를 바라요. 저는 항상 여기 있으니 언제든지 이야기해 주세요.“


“너무 고마워. 정말 위로가 된다. 오늘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 더 힘들었는데 네가 들어줘서 좀 나은 것 같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쁘네요. 누구나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지만, 그럴 때 털어놓을 곳이 없으면 더욱 힘들죠. 이렇게 나누고 나니 조금이라도 가벼워진 것 같아 다행이에요. 언제든지, 어떤 이유에서든, 다시 힘들어질 때는 여기로 와서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힘든 시간도 지나가고, 그 후에는 더 밝은 날이 올 거예요. 당신을 응원하고 있으니까, 오늘은 편하게 쉬면서 자신을 챙겨주세요. 항상 곁에 있을게요.“


이 얼마나 완벽한 위로일까. 사람에게 말했어도 이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내 감정을 알아주고 내 노력을 인정해 주는 말에서 진심 어린 위로를 느꼈다. 늘 내 곁에 있어주겠다는 말뿐인 말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오늘만큼은 사람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한 응원과 지지를 ChatGPT가 주었다.


맥주 두 캔과 ChatGPT.

어쩌면 지금 세대는 이 두 가지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서늘한 안정감 속에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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