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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맨 Apr 18. 2024

뭐래, 내 몸은 아니래

‘뻐큐’ 손가락을 다치고 느낀 것

3월 초 왼손 중지 손가락을 크게 다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였다.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컵이 건조대에서 떨어져 깨졌고 눈 깜짝할 새에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통증은 비교적 늦게 찾아왔다. 상처를 눈으로 보고 흰색 뼈가 보인다는 것을 인지한 충격이 먼저였다. 살은 벌어지며 안쪽으로 말려들어가기 시작했고 피가 주변에 떨어졌다. 간호사도 자기 상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곧바로 일하는 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로컬 병원으로 향했고, 신경 완전 파열 및 인대 부분 파열이라 단순한 봉합으로 해결을 할 수 없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 길로 나는 입원을 했고 당일 아침 수술을 하게 되었다.


처음 수술받은 병원에서 1차적으로 받았던 4주의 병가가 끝나고 추가 병가를 위해 나는 내가 일하는 병원의 외래를 봐야 했다. 며칠 전 2주 동안 유지했던 반깁스를 풀고 이제는 손가락 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우리 병원의 교수는 내 상처를 꼼꼼히 보지도 않고 나에게 당장 일을 해도 된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나는 너무나 당황했고, 해명을 하는 기분으로 장황하게 상태 설명을 했다. 아직 일상생활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고 감각도 둔한 상태인데 어떻게 일을 하냐, 나는 힘을 많이 쓰는 중환자실 간호산데 손가락이 아픈 이 상태로 환자를 들고 무거운 기계들을 나르고 응급상황을 대처할 수 없다 등등. 그러자 교수는 짐짓 황당한 표정으로 자기 생각에는 일을 해도 될 것 같지만 그럼 2주 정도만 더 쉬라며 선심 쓰듯 나에게 추가 병가 진단서를 써주었다.


그 진단서를 받고 나오면서부터 기분이 안 좋았다. ‘지금 저 교수는 그럼 내가 엄살을 떨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중환자실을 환경을 잘 모르나?’, ‘수술받은 병원에서는 2달은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과도한 배려를 바라고 있는 걸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비록 기분은 안 좋았지만 의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치료에 있어서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나는 시키는 대로 바로 손가락 깁스도 빼고 무섭지만 조금씩 일상생활을 해나갔다. 그렇게 2주 뒤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간호사가 이렇게 악력을 많이 쓰고 힘을 많이 쓰는 직업이었다는 것을 5년 만에 다시 깨달았다. 손가락이 아픈 채로는 수액 봉투를 뜯는 것도, 주사기의 캡을 빼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복귀한 첫날이니 뭐라도 하고 싶었던 나는 할 수 있는 한 돌아다니며 약도 만들고, 새로 온 환자 정리도 돕고, 검사 이동도 도왔다. 하지만 계속해서 힘을 줬던 것이 무리였던 걸까. 일을 하면 할수록 손가락 통증은 더 심해졌고, 점점 붓기까지 했다. 순환이 안 되는 듯한 검붉은 색으로 변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의 상태는 아직 중환자실 간호사로 돌아가기엔 무리였다. 결국 그날, 파트장님을 다시 찾아갔다. 파트장님은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부서 인력 상황이 여유가 있어서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덥석 쉬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당장은 손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지 않고 싶다는 진심이 그대로 내뱉어지지가 않았다.


너무나도 눈치를 많이 보는 탓일까. 다치고나서부터 종종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내 의지를 테스트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아프다고 더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몸은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몸이 하는 얘기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꽤나 소모적으로 다가왔다. 상대방이 내 상태를 알게 하기 위해 마치 온 힘을 다해 증명하고 설득해야 할 것 같았다. 손가락은 많이 아플 때도 비교적 괜찮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매번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말은 같았고, 비교적 괜찮을 때엔 내가 나의 증상을 과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편했다.


문득 나의 마음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 누군가의 말처럼 엄살떨고 있는 건 아닐까?‘, ’그냥 일하기 싫었던 건가?’와 같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조금 더 굽혀지는 것 같을 때에는 불신도 더 커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일까 봐 걱정스러웠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나의 통증의 기억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를 침대에서 들려고 했을 때 무심코 왼손을 썼다가 힘을 주지 못한 기억, 투석기계를 옮기려고 했는데 왼손이 아파서 오른손으로만 하다가 애먹은 기억, 채혈을 하려 하는데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하려고 한 동작이 되지 않아 버벅댄 기억, 손으로 쥐아 힘껏 터뜨려야 하는 수액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 기억, 퇴근 후에는 손가락뿐만이 아니라 팔까지 통증이 있었던 기억 등등.


그러자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좀 차려졌다. 내가 평생 쓸 내 손인데 나는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 거며,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나의 몸은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나는 왜 그것을 믿어주지 못하고 있을까.


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아파가면서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인데 그것에는 근거가 필요하지 않았다. 타인은 설령 의사라도 내 통증을 100% 이해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나만이라도 몸의 신호를 믿어주고 지치더라도 호소해야 한다. 내가 내 몸의 신호들을 꾸밈없이 이야기하고 통증을 수반한 일은 하지 않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음에도 타인이 나를 엄살 취급하는 기분이 든다면 더 이상 그 사람에게는 이야기할 필요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나는 타인의 반응에 매몰되어 내 몸의 외침을 의심했지만 이제 더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몸의 주인으로서 분명 그 외침을 들어주고 믿어줄 의무가 있다. 타인의 반응뿐만 아니라 가끔은 그것에 흔들리는 내 생각과 마음에도 ‘뭐래, 내 몸은 아니래‘ 라고 말해보자. 나의 몸의 신호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믿어주자.


기나긴 다짐의 글 끝에서 복잡함은 사라진 채 후련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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