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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맨 Mar 20. 2024

지금은 점검시간입니다.

“우리 헤어지자.” 와 “우리 시간을 갖자.” 중에 과연 어느 것이 더 잔인할까?

예전의 나는 무조건 후자였다.


시간을 갖자는 건 곧 ‘난 헤어질 준비를 마쳤는데 너는 아직 아닌 것 같으니 내가 너를 위해 배려해 줄게’ 라는 약자를 위한 강자의 아량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자의 입장에선 고통의 시간만 늘리는 아주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잔인한 희망고문 같은 거랄까. 실제로 경우에 따라 이 생각이 들어맞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랑에 대한 ‘폼’이 어느 정도 올라왔다고 자신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정녕 내 사람이 될 상인가?’ 알아보는 눈이 생기고 관계를 적절히 다룰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 방심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법. 가장 사랑했던 그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시간을 가질 바에야 헤어진다는 내 소신이 무색하게도, 나는 그에게 시간을 갖자고 애원했다. 내 수많은 계획 속에 ‘너를 보지 않는 미래’라는 건 없었으니까.


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넌 아니?
- KYUL의 <Broken> 중


1분 1초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가사 그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공부에 매진하기도,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도, 찾아가겠다는 무리수를 던지기도 했다. 내 정신이 이러다 미쳐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한 줄기 햇빛처럼 맑은 생각이 깃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왜 밤 12시만 가까워지면 은행도 점검시간이라는 게 있지 않는가.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이 시간은 점검시간인 게 아닐까? 라는 생각.


누군가에게 큰 의지를 하게 되면 그 속에서 간혹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내가 ‘내’가 아닌 ‘너의 내’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 지금이 우리가 그 속에서 나의 모습, 감정, 가치관들을 다시 한번 재정비할 수 있는 점검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점검시간 동안 나와의 대화를 많이 하려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너‘라는 답변은 지워두자.)

내가 필요한 건 뭘까? (역시 ‘너’라는 답은 잊어라.)

내가 힘들 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이 관계에 있어서 잘못한 부분은 뭐가 있을까?

그럼 그 잘못을 개선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우리의 관계가 잘 나아갈 수 있을까?

나에게 너는 어떤 의미인가?


질문은 많이 할수록 남는 게 많다. 점검시간에 오류를 많이 잡아낼수록 내일이 안녕한 것처럼. 점검시간은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나와 네가 각각 서로의 모습을 지키면서도 우리로 나아갈 수 있는 성장통이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인생에 혼자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몰라.“ 내 친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점검시간은 어쩌면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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