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라면서 들었던 부모님의 이야기는 늘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다.
태생부터 다른 두 분의 삶이 대단하다는 느낌보다 나는 그만큼 할 수 없을 거라는 자책이 앞섰다.
아버지는 공부를 굉장히 잘하셨다. 1등만 했다고 들었는데 좋은 머리에 비해 운은 따라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훨씬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안전한 길을 선택하셨다.
엄마는 동네에서 예쁜이로 불리셨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다.
60대 후반인 지금도 나보다 얼굴이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다 들어가 있는 얼굴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내가 엄마의 얼굴을 닮았다면 조금 더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었을까?
머리가 좋은 아버지와 외모가 뛰어나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가 나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하셨고 그 해에 내가 태어났다.
나는 누구를 닮았을까?
굳이 외모로 따지자면 아버지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버지는 날 보고 외할머니를 닮았다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예쁜 엄마의 얼굴은 하나도 물려받지 못했다.
내가 지금 옷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외모를 옷으로 커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가방끈은 짧지만 검정고시학원을 다니려고 서울에 올라가서 일하며 공부했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외할머니의 간곡한 사정에 선을 봐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소문난 효자에 머리 좋은 아빠를 소개받았고 일사천리로 결혼을 하셨다.
외할머니를 위해서 결혼을 결정한 엄마.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혼이 엄마에게 얼마만큼의 행복을 가져다줬을지. 그저 짐작할 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두뇌를 조금이라도 닮았으니 나도 공부를 못했던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대부분의 상장에 최우수상, 우수상이 찍혀있고 6학년 졸업식 때는 전교생 앞에서 성적우수상도 받았다.
내 특이한 이력은 초등학교를 세 군데 다녔다는 거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전학이었다.
아버지는 국가직 공무원으로 2,3년마다 발령을 받아 옮겨 다니셔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초등학교를 다녔던 곳에서 3년, 그리고 2년 반, 그리고 6개월 다니고 졸업을 했다.
세 번째 초등학교에 전학을 가게 된 나는 자기소개를 하고 내 자리로 찾아가기까지 6개월이란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졸업을 6개월 앞두고 나타난 새 친구를 반가워할 친구들이 있을까? 다 끼리끼리 놀고 있고 나는 외딴 시간을 주로 보냈다.
엄마에게 6개월만 방을 얻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안 되겠냐는 말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 군데의 초등학교 중에 마지막 학교는 규모가 가장 컸던 곳이었는데 10반까지 있는 곳에서 내가 알고 지낸 친구는 반에서 만난 딱 두 명뿐이었다.
졸업을 6개월 앞두고 새 교실에 적응을 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해오던 대로 공부를 하고 거기서 만난 두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매일을 견뎠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중학교를 배정받았는데, 남녀공학이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것이 훨씬 재밌을 거라는 기대감, 다시 새롭게 시작을 해 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기뻤지만 나는 또 전학을 가게 된다.
입학식의 설렘이 가득한 운동장에서 전학을 위해 참석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입학식 내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6개월 다니고 졸업했더니 또 전학?
이때부터 내 마음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고
한번 삐뚤어지기 시작한 마음은 자꾸만 엇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