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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Apr 12. 2024

산속 외딴집 자연인과 철학자 그 중간 어디쯤

자연은 사람들을 철학자로 만든다.

봄으로 가득 찬 산속 둘레길을 고등학교 동창 2명과 함께 걷는다. 맑은 날이면 멀리 천수만과 서해바다가 보이는 곳.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친구가 내려준 더치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발길을 재촉했다. 이른 아침 산에는 인적은 거의 없고 오랜만에 만난 남자들의 수다만이 가득하다. 다행히 숲으로 들어갈수록 아침잠 없는 부지런 한 새들이 지저귀며 우리를 반긴다.


한편에서는 발길 따라 피어있는 봄 꽃들이 수줍은 미소를 상춘객들에게 기꺼이 내어준다. 그즈음 상쾌한 숲 속 공기가 코를 통해 폐에 전달될 때면 찌들어 있던 마음까지 상쾌한 기분이 든다.


특별히 빼어난 경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 봄의 기운을 함께 느낀 다는 것이 그 어느 풍경보다 좋을 수밖에 없다.  


쁠것 없이 한걸음 한걸음 걸음에 맞춰 걸을 때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주 아주 일상적인 내용들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이들, 직장, 가정 이야기부터 재미없는 선거이야기. 그리고 골프. 등산 등 각자 살아온 얘기들로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입은 열심히 떠들고 있지만 우리들의 눈은 꼿꼿이 서 있는 나무들, 범상치 않게 보이는 웅장한 바위들에 사로잡힌다.


원시림에 가까워 보이는 숲과 바위마다 어떤 사연 또는 전설 하나씩 묻어두었을 듯한 오브제를 감상하며 계속해서 목적지 없이 걷는다. 그렇게 길을 걷다 왕벚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산방에서 발길을 멈춘다.

누가 먼저라도 할 것 없이 '이런 데에서는 누가 살려나?' 하며 서로를 바라볼 때. 친구 중 한 명이 '내가 아는 분이 사는 곳이야'하며 답을 한다.


궁금한듯한 표정을 하자. 친구는 우리를 그 집으로 안내한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를 처음 맞이하는 것은 거실창을 가득 채운 만개한 벚꽃 View.

봄날 아침 맑은 기운과 화려한 꽃 덕택에 눈이 호강을 할 때 즈음 도인처럼 보이는 친구의 지인이자 산방의 주인장이 내려 준 따뜻한 차향이 오감을 자극한다.

향기 가득한 차 한잔이 목 넘김을 할 때 즈음 거실을 가득 메운 그분의 컬렉션들이 눈에 들어온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반가사유상, 부처님 석상 등 각종 조각상과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는 그림 등. 예술가의 집답다. 내가 '예술'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 예술론과 인생론을 중심으로 산속 특강을 시작한다.

그분의 인생 특강은 쇼펜하우어에서 시작되어, 니체, 스피노자. 합리론과 관념론 그리고 동양철학과 불교 등 동서양의 사상과 철학을 총망라. 우리들은 한 시간 내내 그분의 강의에 빠져든다. 그분의 한 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꽂히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서로를 보면서 미소를 보일 때. 각자 고단 했을 삶을 서로 토닥인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뜨려는 순간, 우리들의 철학자님의 마지막에 남긴 한 마디가 여전히 귀에 맴돈다.


"그냥 욕심부리지 말고 팔자 대로 살어. 사는 거 별거 없어. 그리고 (우리들 마음을 알아챘는지) 여기 산 좋다고 산엘랑 들어 올 생각들 말고... 그냥 가끔 힘 뜰 때 아무 때나 들러"




'그냥 욕심부리지 말고 팔자 대로 살어'

참 뻔한 말이다. 돌이켜 주어진 삶에 내가 만족했던 삶이 얼마나 있었을까 자문해 보니 만족스러운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 대단한 한다고 바쁘게 살았는지. 누가 알아준다고 그렇게 달려왔는지 아쉬움이 크게 남는 대목이다. 그렇게 계속 살다 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없다.


그날 그렇게 산속 외딴집에서 만난 자연인이자. 철학자, 조각가 그리고 작가에게 참 단순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다행히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선해 보이는 칠순이 된 그의 얼굴이 그가 말한 모든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기분을 글로 남기는 지금 순간도 감사하고, 좋은 깨달음의 기회를 친구에게도 자연인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


Epilogue

그날 번개 모임을 주도한 친구가 되돌아오는 길에 그 와의 인연을 밝혔다.

친구 인생 중 가장 어둡고 힘들 때, 친구도 그 산속의 철학자님을 따라 산에 들어가 살려고 했다고 한다.

그때 자연인 철학자는 친구를 타일러 돌려보냈다고 했다. 지금은 그날처럼 가끔 들러 이런저런 인생이야기를 하며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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