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인지 도구를 개선하게 해 줄 과학적 개념에는 뭐가 있을까?
* 원문은 여기
목적 없는 우주The Pointless Universe
숀 캐럴Sean Carroll 씀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 이론물리학자)
세상은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상은 법칙을 따른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꾸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결국엔 '우주의 상태와 자연법칙 때문'이라는 답에 이른다.
흔히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 중심적인 눈으로 우주를 해석하면 우리는 원인, 목적, 존재의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대상을 볼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을 목적론적 시각에서 바라봤다. 비가 내리는 이유는 물이 공기보다 밑에 있기를 원해서이고, 동물과 노예는 인간 시민에게 자연스럽게 굴종한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여기에 의문을 갖는 회의론자들은 있었다. 철학자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와 루크레티우스Lucretius는 초기 자연주의자로, 숨어 있는 목적이나 궁극적인 원인을 쫓기보다는 법칙을 따르는 물질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아비켄나Avicenna, 갈릴레오, 뉴턴 같은 사상가들 덕에 우리가 물리학을 더 잘 이해하게 된 뒤에야, 우리는 우주가 그 자신만의 힘으로 진화하고 무언가의 인도를 받지 않으며 우주를 넘어선 것의 뒷받침을 받지 않는다는 상상을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였다.
종종 목적론자들은 '세상이 지속되는' 걸 신의 권능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목적론자보다 낫다. 세상은 지속될 필요가 없고 그저 지속될 수 있을 뿐이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세상이 따르는 특정한 법칙을 잘 설명했다. 만약 우리가 어떤 경우에 우주의 완전한 상태(혹은 우주와 유리된 일부)를 규정한다면, 물리 법칙을 적용해 바로 다음에 그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 물리학을 다시 적용하면 그다음에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 우주의 완전한 역사를 구성할 수 있을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한다. (물론 이론상 그렇다는 거다.) 그러면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우주의 모습이 나오진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 패턴에 단단히 매여 있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현상에 목적이나 목표가 없다는 물리학의 핵심 시각은 우리가 사회적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인간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길 좋아한다. 어린아이의 죽음, 비행기 추락 사고, 무차별 총기 난사 같은 일은 어떤 숨겨진 계획이 있다는 관점으로 설명해야 한다. 팻 로버트슨 목사는 미국인들의 도덕성이 추락하는 것에 신이 분노하여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맥락을 덧붙이려 했다.
자연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르침은 다르다. 자연법칙이 그렇게 명했기 때문에, 우주가 놓인 상태의 결과이자 우주가 진화한 길의 결과가 그렇기 때문에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위대한 계획이 실현되면서 탄생한 게 아니라, 균형과는 몹시 거리가 먼 환경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그 부산물로 생겨났다. 인간의 뛰어난 두뇌도 생명이 더 훌륭한 복잡성과 지능 수준에 다다르도록 인도를 받아서 발전한 게 아니다. 유전자와 유기체, 그 주변 환경 사이의 물리적인 상호작용 덕에 발전한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들이 생명에는 목적도 의미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목적과 의미는 우리가 창조해 낸 것이지, 저 멀리 세상의 근본적인 구조에서 발견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법칙에 따라 현상은 계속 발생한다. 그것을 타당한 방향으로 이해하고 거기에 가치를 주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분명 우리가 태어난 것에는 거창한 이유가 없다.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정말 냉소적으로 말하면 부모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에, 혹은 아이가 생겨도 괜찮다는 마음에 하룻밤을 보낸 게 이유라면 이유다. 이걸 더 파고들겠다고 부모에게 '왜 자식을 만들고 싶었어?' 혹은 '왜 그날 피임을 안 했어?'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들 유효한 답변은 들을 수 없으리라. 혼이라도 안 나면 다행이지. 설명할 수 없는데 너무나 본질적인 의문은 모두가 피하기 마련이다.
'pointless'를 '목적 없는'이라고 옮겼지만 우주에는 목적뿐만 아니라 이유도 없고 심지어 요점도 없는 듯하다. 그 거대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우주에 목적과 이유와 요점이 없는데, 그 속에서 먼지보다 작고 하찮은 우리 개개인에게 목적과 이유와 요점이 있기를 기대하기에는 논리적으로 참 모순되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뭔가를 가졌다고 해서, 혹은 갖지 못했다고 해서 우쭐해하거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존재와 부재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나 타당성이 없다. 내가 가진 걸 아무 이유 없이 뺏겨도 자연법칙은 그러한 거라며 쿨하게 넘기지 못할 바에는, 나에겐 뭔가가 없다고 성을 내는 게 앞뒤가 안 맞고 볼썽사나운 행동으로 보일 것 같다.
최근 SNS에서 불교박람회를 향한 반응이 뜨거웠다. 운석만 떨어지지 않았을 뿐 충분히 디스토피아적인 이 세상을 오랫동안 살아가야 하는 젊은 사람들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비어 있음', '없음'에 세상의 진리가 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