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다 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에 관해
결코 오래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인데도 미래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진리와 불쑥불쑥 맞닥뜨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공무원 시험을 볼 줄 몰랐고, 그 시험에 합격해 놓고는 그만둘 줄도 몰랐고, 외국계 회사에 합격할 줄도 몰랐으나 거기에서 쫓겨날 줄은 더더욱 몰랐다. 필라테스에 이렇게 많은 돈을 꾸준히 투자하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아빠가 심근경색에 걸렸다가 극복하거나 엄마가 완치 없는 자가면역질환 판정을 받는 일도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다.
간접적으로는 젊은 나이에 큰 병을 만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접했다. 사내 게시판에 본인상이 발생했다는 게시물을 보기도 했다. 너무나도 빠르게 악화되는 기후 위기, 세계를 멈추게 한 전염병, 2024년에도 끝나지 않는 전쟁, 탄핵, 각국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사건들, 장점보다 단점이 더 커 보이는 생성형 AI의 출현 등등,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낯선 일들이 너무나 많이 벌어진다. 불현듯 재해처럼 찾아온 일들에 개인은 삶과 죽음에 대한 주권을 있는 대로 빼앗긴다.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형편없는 명중률의 미래 계획이나 구상에 얽매여 나에게 중요한 일이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미루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계획은 대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이 정도 나이가 되면 결혼해야지, 이즈음에는 이만큼의 돈을 모아야지, 이직해야지, 하다못해 오늘 퇴근하고 나서는 꼭 어떤어떤 일을 해야지 하는 크고 작은 계획들이 뒤엎어진 경험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개인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원대한 계획은 ‘적어도 그런 모습으로 죽지는 않겠다’처럼 ‘적어도’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명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악을 피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찬란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 번뿐인 이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와 희망을 예지력이나 계획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한다. 바로 용기다.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부터 퇴사 후 유럽 일주에 나서는 일까지, 물론 돈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큰 일을 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잔고가 넉넉해도 용기가 없으면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관성이 닦아 놓은 편하고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는 모든 행위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주말 하루 시간을 내어 광장에 나가겠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기와 죽기 전에 몽블랑 정상에 올라보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된 용기는, 누군가의 인생에 자부심을 준다는 측면에서 같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으로 그의 자아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내가 가진 가치, 내가 키우고 싶은 나를 실현하기 위해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내가 살았던 삶을 돌아본다. 내 존재에 큰 영향을 주었던 건 난생처음 혼자서라도 보겠다는 각오로 관람했던 영화와 몇 가지 사소한 도전들이었다. 이건 해야겠다고 나 홀로 감행했던 여행의 기억들이 유독 생생하며, 가장 절실하게 발휘했던 용기가 나를 살게 했다. 주말에도 곧잘 계획을 세우는 나지만 정작 위의 일들은 모두 계획 없이 발생했다.
우리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발휘할 수 있는 주권은 없을지언정 용기를 낼 주권은 있다. 그리고 그 소중한 힘이 미련 없이 반짝이는 인생을 만드는 것 같다.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책 <위시>를 읽고 지나간 생각을 주절주절 풀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