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에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사무실 같은 냉방이 잘 되는 실내에서 반바지를 입으면 다리가 시린데, 원피스는 바람이 통해서 시원하기도 하고 상하의 가격을 합친 것보다 싼 가격에 1장을 구매할 수도 있어 경제적이기도 하다. 옷 조합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점도 편하다. 뒤에 지퍼가 달린 게 아니라면 입고 벗는 것도 얼마나 편한지!
반면 엄마는 원피스도, 스커트도 입지 않았다. 거기에는 발이 아파 구두를 신지 못한다, 하지 정맥류가 있어서 다리를 드러내기가 부끄럽다, 굳이 입을 일이 없다 등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잠옷이 아니고서는 원피스를 입지 않던 엄마가 어제 처음으로 원피스를 사 왔다. 기장은 길지만 시원한 소재에 짙은 초록색이 아주 예쁜 원피스다.
나하고만 살게 된 이후 엄마는 그전에 한두 번 원피스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복지관으로 운동 삼아 춤을 배우러 다니시는데 멋있게 입고 오는 사람들이 조금씩 엄마 눈에도 띈 모양이었다. 복지관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대체로 시장을 거치시는데, 어쩌면 그 길목에서도 눈에 띈 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 그런 걸 전혀 이상하거나 뜻밖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아름답기 위한 조건은 없지 않겠는가? 그게 성별이 됐든, 나이가 됐든 말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집에서 탈출해야겠다는 계시를 받은 언니가 갑자기 엄마를 데리고 크로아티아 여행을 가자고 선언해 버린 일이었다. 어찌나 갑작스러웠는지 엄마는 당장 여권부터 갱신해야 했다. 나도 전에 크로아티아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여행 상품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거기가 굉장히 예쁜 곳이니 새 옷이라도 입고 멋진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엄마는 슬그머니 거기에 동의했다. 내가 옷을 사 주겠다는 제안까지 흔쾌히 받아들여 놓고서는 혼자서 척척 옷을 사 가지고 와서 약간 아쉬워지긴 했지만.
엄마가 언니의 긴급 제안에 당장 박수를 쳐 가면서 좋아한 건 아니었다. 아빠가 곧 칠순이라 분명히 뭔가를 요구할 텐데, 지금 여행을 가면 돈이 두 배로 들지 않겠냐면서 언니의 사정을 걱정했다. 엄마는 본인에겐 남이 된 사람을 아직도 꽤 신경 쓴다. 그리고 나는 사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신경 쓰인다.
하지만 엄마가 처음으로 나들이를 위한 예쁜 원피스를 사는 걸 보면서, 이렇게 뒤늦게나마 뭔가를 풀어내고 새로운 걸 해보는 모습이 정말 반갑고 감사하다. 내가 모르고 엄마 본인조차 몰랐을 억압된 무언가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어머니와 아내는 많은 걸 참고 버리고 희생한다. 잃는 것도 많다.
엄마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고 낯빛이 좋아진 걸 보면, 나는 그 이전에 엄마를 어둡게 했던 것들이 무엇이 있으며 그것들의 역사가 얼마나 진득하고 오래되었을지 상상하기가 어려워 눈이 찡해진다.
이 글을 쓰고 나니 엄마를 위해 밀짚모자를 사주고 싶어졌다. 비록 단 일주일만의 여행을 위한 것일지라도, 이후 엄마가 그 모자를 쓸 일이 없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