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낭만을 사랑하고 추구한다. 동시에 낭만의 귀함을 안다. 감사하게도.
낭만이란 온몸을 다해 찬미하고 있어야 나에게 왔을 때 비로소 그게 소중한 낭만인 줄 알 수 있는 존재 같다. 그래서 언제나 의식적으로라도 더욱더 낭만을 맞이할 준비 자세를 취하려는 것이다.
나와 낭만의 운명적 만남은 자주 이루어져 왔다. 낭만은 참 사소한 곳에서 등장해서 행복한 감정만 남기고 장면은 사라져 버리기 쉽다. 그래서 난 낭만의 순간을 만날 때마다 휴대폰 메모장 혹은 일기장에 기록하려고 하는 편이다.
나의 낭만을 담은 일기를 공유한다. 내 낭만을 읽으시다 보면 읽으시는 분들의 일상에 숨어있던 낭만이 기억나고, 눈에 띄고, 기록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두근거림도 있겠다.
2022년 12월 7일
내 삶은 꽤 낭만적인 것 같다.
어릴 적엔 논두렁을 걸으며 뜨거운 석양과 따뜻한 바람을 느지막이 느끼기도 하고, 커다란 맥주 컵에 올챙이를 기르고 주말 아침마다 눈뜨지도 못한 채 올챙이 다리가 나왔나 보러 뛰어나오기도 했다. 낡은 5층짜리 아파트에서 왼편 한 창은 내려다보면 하늘과 사람과 이웃집이 보이고, 오른편 한 창은 내려다보면 비밀의 숲 언덕 같은 초록색 환상의 풍경이 보였다. 무더운 공기가 몸을 휘감는 여름 한가운데 탈탈거리는 파란색 기다랗고 낡은 선풍기를 틀고 낡은 야구 만화를 보기도 했다. 아니면 이 시대엔 나만 보고 있을 듯한 오래된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폭풍우가 부는 날 날아갈 것 같다고 까르르 웃으며 둘도 없던 친구와 겨우 집에 오기도 하고, 눈 오는 날 공부는 하얗게 잊고 새끼강아지처럼 학교 운동장에 발자국을 남기고. 그 많던 눈을 다 뭉쳐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점심시간엔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으로, 학교 내리막길 차도에 다 같이 누워 일광욕도 했다. 주말에 학교에 나와 건물 밖 벤치에 앉아 공부를 하는데 옆에 길고양이가 앉은 적도 있다. 나란히 앉아있는데, 내가 작게 움직이기라도 하면 떠나갈까 봐 노심초사 공부엔 집중도 못하고 주말 공기만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기억도 난다.
떠오르는 게 참 많다. 최근엔 드물게 새벽에 눈을 떴다가 어스름한 세상 속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남학생의 뒷모습도 보고, 겨우 몇 조각 내리는 눈에 신나서 창문을 열고 캐롤을 틀고 나무 심지가 타닥타닥 타는 초도 켰다.
알바를 하는 곳에는 외국 손님께 영어로 주문을 받아주려고 연습했는데, 딱 오셔서 영어로 대화했다. 부족한 회화 실력에도 감동하시면서 악수를 청해 주시고 칭찬해 주셨다. 최근엔 딸아이의 인형을 위한 이불을 만들기로 했다는 어머니도 만났다. 길게 고민하시다가 솜 한 봉지와 무지갯빛 폼폼이를 사가셨다. 어떤 소녀분은 매장에 있는지도 몰랐던 포근한 목화솜이 그려진 편지지와 은은한 연하늘빛 리본을 사가셨다. 수줍은 미소가 고르신 상품들과 너무 닮아 그 순간은 나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싶어 져 어설프게 따라 미소 지었다.
여행을 가면 낭만은 필히 매 순간 생긴다. 서울 소풍에서는 한복 입은 나를 한 신사 할아버지가 어여쁘다며 꼭 안아주시고, 제주도 우도에서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할아버지께 우도에 대한 사랑 어린 이야기도 들었다.
그냥 갑자기 낭만적인 기억들이 떠올랐다. 잊지 않게 적어두고 싶었다.
요즘 사람들은 '소확행'이라고 하던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고들 하던데, 추구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숨은 낭만이 많다. 그걸 찾아내며 하루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항상 낭만을 껴안을 행복의 준비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인생의 책갈피같이 내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그러한 낭만, 그 낭만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까. 온마음 다해서, 그렇게 낭만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