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설마 어글리 코리안?
나는 여행을 할 때 어느 상황이든 타국인을 마주하게 되면, 최대한 조심하고 예의 있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모습이 누군가에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이런 자세를 유지한 채 여행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 쓰기 어려운 많은 돈을 사용했고 가족, 지인들과 간신히 맞춘 시간이기에 한순간이라도 더 즐겁게 보내고 싶은 마음 또한 강하다. 언제든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질 상황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자세가 무너지게 되면 분명 누군가에게는 작은 피해를 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중국 단체 관광객에게 피해 입은 경험이 정말 많다. 바로 옆에서 큰 목소리로 떠든다거나 몸을 밀치며 새치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소한 상황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그들만이 갖고 있는 패시브 스킬(?)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최근 유럽 여행과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모습들이 자주 목격되는 거 같아 조금은 우려되는 부분이 생기게 되었다.
아내와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곳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인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 스팟이 있다. 바로 스위스 국기가 꽂힌 지점인데 그 뒤로 펼쳐지는 자연경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나와 아내도 이곳에서 짧게 사진을 찍고, 바로 아래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라면을 먹을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순서가 꽤 길었지만, 하산을 위한 열차와 곤돌라 마감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가 남은 상황이라 충분히 여유가 있다 생각했다. 어떤 한국인 커플의 순서가 되기 전까지 말이다.
그들은 20대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었는데 자신들의 순서가 되자 삼각대를 펼쳐 놓고, 마음에 드는 구도가 나올 때까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보통 외국인들은 간단히 사진을 찍고 비켜주는데 이들은 도통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구도가 잡히면 다양한 포즈를 잡았는데, 이제 끝이겠구나 싶다 하면 바로 다른 방향으로 삼각대를 놓고 사진 찍기를 반복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데... 국기가 펄럭일 타이밍을 기다리며 꺄르르 웃는 커플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15분이 지날 때쯤 한 백인 남자가 참지 못했는지, 젊은 커플에게 순서를 비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도 이 커플은 백인 남자의 요청을 들은 채 하지 않고 묵묵히 사진 찍기를 반복했다. 뒤에서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외국인들을 바라보자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글리 코리안'이 되어버린 그들은 외국인들의 압박에 짜증 한가득한 표정을 짓고 20분을 넘겨서야 사진 스팟을 떠나게 됐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상황이라, 아내와의 융프라우 식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이 상태에서 촬영까지 포기하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게 되어버리니 인증샷만큼은 꼭 찍고 내려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놈의 인증샷이 뭐길래... 스스로도 기가 차다.)
우리 순서가 다가올 때쯤 마감까지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이제 우리 뒤에 있는 한국 학생들이 앞줄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사진 좀 빨리 찍으라고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외활동으로 만난 그룹으로 보였는데, 어색한 관계에서도 단합이 굉장히 잘 되어있었다. 특히 내 앞에 있던 중국인 커플의 순서가 되자 더 거세게 목소리를 냈다. 중간에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까지 섞어내는데 순간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민망했다. 중국인 남성은 계속 나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냈고, 나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을 해줬지만... 이게 대체 누가 누구를 욕할 상황인 건지... 그날의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실망감을 갖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지... 안 좋게 평가를 하더라도 할 말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주할 때 좋은 인식을 갖는 것 또한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사진을 찍고 융프라우를 빠져나오게 됐다. 뒤에 있던 학생들의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같은 공간에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이런 이기적인 언행은 피하는게 맞았다.
중국 단체 관광객에 대한 인식은 변함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행 에티켓을 제대로 지킨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과연 그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번에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도 인상을 찡그리게 하는 상황들을 여러 번 봤기 때문에 마냥 즐거웠던 여행은 될 수 없던 거 같다. 사소하지만 우리 다음으로 여행 올 사람들과 다음에 또 놀러 올 우리를 위해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