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23년 5월 11일 새벽 4시16분
도쿄 시부야의 어느 호텔
삐이이이이이이이-------------!
베게 옆에 둔 핸드폰에서 익숙치 않은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을 자고 있던 나와 아내는 화들짝 놀란 채 몸을 일으켰는데, 이어서 방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정신없는 상태로 급하게 핸드폰 알림을 살펴봤다.
지진? 이게 지진이라는 건가?
민방위 지진체험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난생처음 겪어보는 흔들림에 우리는 멘붕 그 자체였다. 진동은 빠르게 멈추었고, 주변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남은 건 나의 터질듯한 심장소리뿐이었다.
방이 흔들린 시간은 약 2초..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엄청난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떡하지?
이번 여행이 끝나면 바로 취업 준비를 할 예정이라 최대한 재밌게 보내고 싶었는데
일본에 도착한지 단 하루 만에 지진을 경험하다니... 여행 계획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안 그래도 최근에 일본 지진 소식을 여러 번 접했고, 곧 대지진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도 꾸준히 들렸기에 이번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였다.
나와 아내는 서로를 진정시키고, 핸드폰을 살펴보았다. 인터넷에 '일본 지진' 키워드를 검색하니 방금 일어난 지진의 진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도는 무려 5.4...!
일본 지역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꽤 가까워 보이는 위치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 영향권에서 이 정도의 흔들림이라니 건물이 허술했으면 정말 자다가도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탄탄한 내진설계... 정말 칭찬할만하다.) 바깥 상태를 확인하니 사람 한 명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아 일본에선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건가? 뭔가 머쓱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침까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다시 각자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내는 금방 잠에 들었는데, 평소에도 겁이 많던 나는 불안한 마음에 잠을 청하기 힘들었다. 눈을 감으면 과거에 봤던 다양한 지진 관련 콘텐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침대가 천천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정말 집중해야만 간신히 느껴지는 흔들림이었다. 마치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재울 때 부드럽게 좌우를 흔드는 느낌이랄까... 이게 여진인지 아니면 내가 꿈을 꾸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런 부드러운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침이 밝았다.
덜컹 덜컹 덜컹 덜컹
창밖에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에 간신히 눈을 떴다. 호텔 창문이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하진 못하나 보다. 그래도 큰 불편함은 없었다. 나는 지진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였다. 이어서 몸을 일으켜 커튼을 걷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바깥세상은 새벽의 상황과 대조되게 너무나도 맑고 평화로웠다. 전철 안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건너편에는 가벼운 아침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게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인 걸까? 나와 아내는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모습에 조금씩 안심이 되었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게 평소에 대비가 잘 되어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행... 괜찮겠지? 우리는 조심스럽게 원래 일정에 맞춰 움직이기로 결정하고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지금은 일본에서 일주일간의 일정을 잘 마치고 돌아온 상태이다. 얼마 전 동해에서도 진도 4.5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 지진 소식들이 왜 이렇게 많이 올라오는 건지 확실히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움직임들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강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도쿄에서 맞이한 평화로운 아침을 이곳에서도 맞이할 수 있을까?
나도 이렇게 경험을 하기 전까지 지진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우리나라도 국민들이 지진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질 수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내진설계 여부를 확인해 보니 설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뭔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