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고 혹사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
나에겐 서너 달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휴식을 취하고 본격적으로 취준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이직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걸까? 이전처럼 잠을 자도 편하지 않고 피로감은 점점 쌓여가는 느낌이다. 나참... 직장을 다녀도 스트레스였는데 푹 쉬고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니!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선 나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만약 이전 직장에서 안식휴가를 줬다면 나는 퇴사를 하지 않았을까? 그건 아니다. 분명 대감집 노비의 삶을 체험하며 돈맛을 느껴왔지만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정체된 자신을 보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꾸준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한 곳에서만 잘한다면 의미가 있을까 여전히 나의 선택에는 후회 없다.
퇴사 후의 삶은 처음으로 리셋된 것과 같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의 타이틀도 사라졌고, 정말 아무런 수식어가 붙지 않은 평범한 '나'일뿐이다. 그대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 했다.
오랜만에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니 5년 전에 작업한 자소서와 포트폴리오가 그대로 저장되어 있었다. 두서없이 철이라도 씹어 먹겠다는 소개 글과 레이아웃의 개념은 잊은 건지, 어설프게 배치된 요소들로 가득한 포트폴리오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런 상태로 열심히 이력서를 뿌리고 잘도 여기까지 헤쳐오다니... 지금도 대단한 수준은 못 되지만 그동안의 시간을 마냥 헛되이 보낸 건 아닌듯싶다. 그렇게 짧게 스스로를 칭찬했으나 결과적으로 저장된 데이터에는 건질만한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역시 포트폴리오는 평소에도 꾸준히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 것, 다음부터는 부지런히 기록하고 언제든지 준비된 상태가 되리라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콘텐츠 마케터의 포트폴리오는 일반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디자이너의 경우 작업물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콘텐츠 마케터는 시각적인 결과물보다는 프로젝트 과정의 기여도와 성과를 수치화하여 설명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콘텐츠 마케터로 전향한 나는, 5년 동안 쌓아온 작업물 중에서 필살기로 보여줄 3-4건의 프로젝트를 선택해 데이터로 표현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주로 담당해온 콘텐츠들은 고객의 사용성을 높이기 위한 가이드 콘텐츠였기 때문에 주로 반응을 지켜볼 뿐 데이터로 수치화하기엔 쉽지 않았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안일한 자세로 회사를 다녀왔는지 스스로에게 아쉬운 부분들이 쌓여간다.
자신감으로 시작한 이직 과정 속에서 근심 걱정이 조금씩 피어오르지만 나는 결국 새로운 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완성하여 담당할 수 있는 업무의 회사들을 찾고 이력서를 열심히 뿌리고 있다. 그나저나 채용 글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내 마음에 들어오는 회사는 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걸까? (부디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