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여행, 양주안》을 읽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삶을 재밌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P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밝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사랑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사랑을 할지를 더 고민한다. 단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던 시간들이, 그 시간들 속 나 자신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은 사라지고 충실해지는 순간, 계산적인 판단과 이해관계가 만해한 사회에서 숨이 트여 이해와 양보, 배려로 존중하는 관계, 좀 더 다양한 표현으로 기분을 느끼고 밝아지는 감정이.
<폭탄은 생명을 죽이지만 비는 생명을 자라게 해요. 폭탄은 돈을 주고 만들지만 비는 그냥 얻는 것이죠. 우리는 값없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살아요. 거저 얻은 것은 하찮게 보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죠.>
그런데, 사랑만큼 중요한 건 '돈'이기도 한 거 같아요. 돈이 있어서 더 행복한 건 모르겠지만, 덜 불행해지고 가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 맞는 거 같습니다. 돈이라는 가치 기준은 생각보다 많은 걸 좌지우지하더군요. 끊임없이 비교하고 불안해하는 굴레로 나를 속박합니다.
말로는 '돈이 다가 아니지'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둠 속 깊은 내면은 '결국, 돈이지' 강박합니다. 아직도 나를 만족시키는 '돈의 기준이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럼에도, 인생의 시점에서 돈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으려고 애씁니다.
<크리스마스란 대체 뭘까. 전 세계가 같은 날에 비슷한 옷을 입고 캐럴을 듣는다. 사람에게는 가끔 의미에 관한 강박을 대신해 줄 더 큰 의미가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고작 하루를 위해 크리스마스를 장식한다. 꾸미는 데 며칠이 걸리고, 치우는 데 며칠이 걸린다는 걸 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니까. 일 년에 하루 정도는 삶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것이다. 오늘은 다 괜찮다.>
크리스마스 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어느 거리에나 캐럴이 들리고 조금 더 신난 모습으로 활보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좋습니다. 어쩐지 연말에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관대해지는 거 같아요. 한 해를 회고하는 마음으로, 남은 한 달을 따뜻하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채워지는...
<나를 살게 하는 건 꿈이 아니라 밥이다. 몸 누일 방 한 칸이다. 사랑을 나눌 영화관이다.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다. 노을이 지는 바다다. 나무가 무성한 숲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꾸역꾸역 살아가는 친구다. 가족이다. 꿈은 그다음이다. 살아나음 사람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갖는 것이다. 살아 있지 않은 사람에게 꿈은 없다.>
우리가 '꿈'이라고 이야기하는 포부들이 정말 '꿈'일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무엇이 갖고 싶다던가, 어디를 여행하고 싶다던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던가, 꿈으로 치부하는 것들이 때로는 현재의 상황과 시점을 벗어나고 싶은, 회피하고 싶은 욕망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하리오. 그 꿈이 현재를 살아가는 버팀이 된다면.
<조그만 삶을 사는 사람은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도 애써 외면해야 한다. 나는 다시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기꺼이 슬퍼할 만큼 응원할 수 있는 몇몇 사람을 만나서 웃고 울며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계가 점점 좁아진다고 느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비좁은 울타리를 만들고, 얼마나 더 조그만 삶을 견고하게 다질지 모르겠다..... 선택이란 건 오묘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지만, 주변 환경이나 시대의 흐름에 영향받기 마련이다. 온전한 의지와 선택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고려할 뿐이다. 그러니 언젠가 삶을 돌아보며 나에게 물을 때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때 그래야만 했나?
그래야만 했다. >
그저 주변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나를 지지해 주고, 말없이 나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기를. 다른 의견과 조언들로 나와 부딪힐지언정, 결국엔 그저 응원해 주기를.
<여행은 나를 둘러싼 세계 바깥에서 견고하고 아름다운 울타리를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매번 비슷한 다짐을 하게 됩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자는 내용입니다. 나의 존재가 세상에 변화를 가져다줄 거라는 허황된 꿈을 꾸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작은 울타리 안에 제법 괜찮은 정원을 가꾸는 삶이라면 좋겠습니다. 나의 정원에는 사랑이라는 나무가 자라납니다. 우정이라는 꽃이 핍니다. 신뢰라는 비가 내립니다.>
저는 여행이 좋습니다. 내가 커오고 자라온 지지대가 아닌 땅에서 완벽한 타인으로 머물며 경험하는 시간들이 좋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나를 모르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나게 되나 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다른 문화의 풍경이, 길 가다 마주치고 스쳐 지나갈 인연들이 오히려 편합니다. 평가하고 평가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 여행이라는 것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그러기에 저는 오늘도 오늘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