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려야만 보이기 시작하는 것
할 일 없던 어느 빈 휴일,
아빠가 내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에서부터 애교서린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딸램씨~아빠랑 세차하러 안 갈래?”
내가 고작 세차를 왜 따라가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매우 실망한다.
“무슨 세차를 데려가…” 나지막이 말하면,
“그래! 애 데리고 가면 뭐 하라고 세차를 데려가!”
언성 높여 메아리 같은 잔소리를 바짝 쏘아붙여주는 엄마.
일 중독이던 당신 딴엔 휴일을 보내는 법이 어색한데다 적적하니 만만한 딸과 함께 시간을 때우고 싶었던지라 매우 섭섭해한다.
“그럼 뭘 하는데!”
“아니 카페 가서 같이 대화를 할 수도 있고, 맛있는 걸 사 먹으러 가도 되고..”
“멀뚱히 앉아가 맨 먹기만하러 가나~”
대화가 슬슬 민망하게 늘어지면서 꿈에서 깼다.
그러고보니 스무살쯤 집에서 같이 살 적엔 그래도 아빠의 손세차를 마지못해 몇 번 따라갔더랬다.
근데 내가 서른둘이니 10년도 더 된 데이트 아닌 데이트의 추억이 떠오른 것이다.
바보같이 데이트조차 자기효율적이던 울 아빠..
옆 집의 공주같은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이게 참 섭섭했는데 아빠 나름의 자기랑 같이 있자는 부대낌이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같이 할 수 없다는 그리움으로 추억 속에서 당신의 마음을 쫓아 읽어갈 수밖에 없으니 이럴 때면 살아간다는 게 겁이 난다.
부모라면 응당 이래야만 한다고 자식으로서만 생각할 줄 알았는데 서른이 넘고부터는 내 주변을 품어줘야 한다. 내가 직접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게 나이를 먹어도 저절로 되질 않고 그렇다고 내 이기심과 정체성을 다 죽여가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서럽게 느낄 줄 알아버려서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던 당신이 여기 없다는게 더 무섭고 아프다.
“인생이 을~~~매나 슬픈 줄 아나?”
입버릇처럼 한 번씩 내뱉던 아빠의 말이 번갯불처럼 일상 속에서 자꾸만 떠오른다.
참으로 힘빠지고 미운 말이었는데..
산비둘기가 구구~구구 하는 것이 엄마 찾는 울음소리라던 실없는 얘기를 했었는데..
얼마 전 아파트 단지로 내려와 울려퍼뜨리는 그 울음소리가 이제 내 귀에도 그렇게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