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량하고 더위가 한풀 꺾긴 자리엔 선선한 바람이 분다. 꽃가게를 오픈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모든 게 다 잘 될 거란 희망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녹록지 않다.
구석에 있는 가게라도 방금 막 오픈하면 호기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사방으로 카페와 음식점이 있어 간단한 차와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오고 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초반이고 아직은 입소문에 더 신경 써야 할 때라 그냥 구경 오는 사람도 좋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는 순간, 그 많은 발길이 뚝 끊겼다.
오픈한 지 3개월 만에 생긴 일이다. 하루아침 사이에 가게가 설렁해지자 불안함이 몰려왔다. 지금은 코로나가 터진 시점에서 3년이나 지났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지금과 달리, 처음에는 혼비백산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재난문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기가 아무리 시골이라 할지라로 코로나는 전 세계로 퍼진 전염병이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몸이 절로 움츠려 들었다. 모두 꽁꽁 숨어 버린 것처럼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손님도 당연히 없었다. 다 시들어서 머리가 축 처진 꽃을 쓰레기봉투에 버릴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코로나 때문에 줄줄이 폐업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화면 속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한 달이 넘어가자 머리가 아팠다. 전화 온 친구에게 푸념처럼 주저리 말한 게 아직도 생각난다. 친구는 한참 동안 듣고 있더니,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원래 가게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티는 거야-라고 조언을 했다. 그때는 말이라도 고맙다고 넘어갔는데 정말 딱 맞는 말이었다. 존버는 승리한다, 인터넷에서 장난처럼 떠도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버티자. 그래. 버티는 거야.'
오로지 버티는 걸 목표로 잡았지만, 두 달이 넘어가기 무섭게 눈물이 났다. 월세, 전기세, 꽃값, 등등. 가게를 운영하는데 드는 기본적인 비용이 부담스러워졌다.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배고파서 천 원짜리 우유 하나 사 먹는 게 아까워졌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가게를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무엇보다 꽃가게를 열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이 허무하게 끝날까 봐 무서웠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견디기 위해 경험 많은 꽃집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지인과 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10년 이상 같은 업종을 이어간 숙련자에 비해, 나는 방금 막 개업한 햇병아리였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단골이 있느냐 없느냐다. 전체적인 소비가 줄어든 시점에서 단골로 수입을 유지하고 있던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나는 다시 머리를 굴리다가 홍보에 신경 쓰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sns의 활성화다. 계정은 있으나 정성스럽게 관리하진 않았다. 감정 없이 의무적으로 올렸던 과거와 달리, 정성스럽게 다듬기 시작했다. sns 용으로 상품을 만들고, 비싼 꽃과 고급진 재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 장이라도 예쁜 사진을 건지기 위해 수십 장을 찍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실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두 번째로 한 일은 현장에서 하는 광고다. 처음에는 현수막을 제작할까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나는 현수막 대신에 발로 뛰기로 했다.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서 큰 바구니에 들고 주변에 돌리기 시작했다. 낯가림이 심한 내가 카페나 식당에 양해를 구하고 손님에게 꽃을 나눠 줄 주는 생각도 못 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색하게 꽃을 내밀기도 했다. 그때 그 남성분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목구비를 구기며 뭐 이런 게 있냐는 얼굴이었다. 나이 드신 할머니는 웃으며 받아줬고, 어떤 학생은 나를 굉장히 안쓰럽게 봤다. 나보고 힘내라며 손에 있던 초콜릿을 줬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노력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졸업식 시즌에 꽤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다른 꽃집에 비해 매출이 높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쓸 만큼 바쁘지도 않았지만, 지금까지 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어지는 밸런타인데이도 다른 가게처럼 정신없이 바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다른 가게에 비해 떨어진 것뿐이지, 내 가게에서만 보면 매출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뭐 이런 거 가지고 기뻐하냐 싶지만, 나는 아니다. 노력으로 얻은 가게가 그대로 문을 닫을까 봐 마음 졸이고 뜬 눈을 밤을 지새웠다. 월세와 꽃값, 재료값. 운영비용을 다 지불하고도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지옥 같은 코로나시기를 생각하면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