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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서 Feb 16. 2023

3. 가치

 할머니와 손녀가 찾아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손녀는  마스크를 쓰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기초화장을 시작으로 마지막 립스틱까지 모두 다 한 것 같았다.

손녀는 싱긋 웃으며 생일 꽃다발을 주문했다. 꽃을 많이 사봤던 모양이다. 내가 입을 떼기 전에 원하는 종류, 스타일, 포장지 색상을 쭉 말해줬다. 요즘 많이 나가는 파스텔톤의 분홍 꽃다발이었다. 가격은 35000원 정도로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손녀는 마음에 들었는지 싱긋 웃으셨지만, 할머니는 아니었다.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저게 뭐라고."


몇 글자 안 되는 말과 혀 차는 소리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 손녀는 당황하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오픈하고 얼마 안 된 상황이었으면 어쩔 줄 몰라했겠지만, 1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할머니 이런 색은 싫어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꽃다발을 다시 만들었다. 먼저 만든 꽃다발은 아직 자르지도 않고, 포장도 안 해서 다시 만든다는 것에 거리낌은 없었다. 나는 1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색을 섞어 휘황찬란하게 만들었다. 빨간색 옆에 노란색, 그 옆엔 파란색. 누가 봐도 촌스럽지만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이런 걸 더 좋아하신다. 나는 마지막으로 줄기를 자르기 전에 할머니께 보여줬다. 하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이때는 좀 당황했다. 내가 실수한 게 있나 싶어 우물쭈물하자, 손녀가 먼저 만들었던 꽃다발을 가리켰다. 파스텔톤 꽃다발을 계산하고 두 분이 나가는 동안 잔잔하게 틀어놓은 클래식이 민망할 정도로 아주 조용했다. 그리고 문이 닫히기 무섭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휴, 돈 아까워."

 

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꽃 소비가 적은 나라인 만큼 저런 반응을 심심이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전쟁을 겪고 IMF를 지나온 세대라면 당연할 것이다. 지금 당 입에 풀 칠할 돈도 없는데, 먹을 수도 없는 꽃을 왜 쓸데없이 사냐 그 말이다. 어려운 시대를 겪어온 세대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흔히 말하는 MZ세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남자친구가 꽃을 사 올 때마다 왜 그런 걸 사 왔냐는 여자친구도 있었다. 집에 팔다 남은 꽃을 갖다 두면 놀러 온 사람들이 꽃을 신기하게 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그렇수 있다. 순한 맛이다.


하루는 중년의 여성이 어머니께 드린다고 꽃다발을 사가셨다. 그리고 30분 뒤, 어머니가 그 꽃다발을 가지고 와서 환불해 달라고 했다. 안된다고 말하기 무섭게 나를 죽일 듯이 째려보고 가셨다. 다른 하루는 할아버지가 오셨다. 가게를 쭉 둘러보시더니, 정말 기가 막힌 말을 했다.


"내가 산소에 가려고 하는데. 예쁘고, 시들지 않고, 오래가고, 튼튼하고 죽지 않은 꽃으로 만들어."


꽃은 지속적인 관리가 없으면 빨리 시든다. 특히 절화는 계속 물에 꽂아놔야 살 수 있는데 시들지 않는 꽃이라니ㆍㆍㆍ. 나는 생화가 아닌, 조화를 찾는 줄 알고 조화집을 소개해 줬다. 말을 툭 뱉거나 반말을 쓴 건 아니다. 평소처럼 낮은음으로 느릿느릿하게 말하는데, 할아버지는  그런 꽃이 없냐면서 삿대질을 했다. 비싸기만 한 거, 좀 오래 보겠다는 게 잘못됐다며 있는 대로 소리쳤다. 같이 온 손자와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할아버지를 데리고 나갔다. 예쁘고 시들지 않고 오래가고 튼튼한 꽃. 그런 꽃이 있으면 꽃집은 이미 망했다. 꽃값이 비싼 12월 말이라 할아버지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비싼 돈을 들이는 만큼 오래 유지되는 걸로 찾는 말임을 알고 있다.  일회용처럼 끝나지 않길 바란 것 알고 있다. 그렇다고 진짜 오래가는 꽃을 면, 일주일 뒤에 와서 왜 시들었냐고 소리 지르는 사람 있다. 할아버지처럼 말하는 분이 대부분 그렇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성묘를 가는 추석과 설날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손님들의 고함소리가 머릿속에 떠돈다. 침 튀기는 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우울한 만큼 슬프기도 한다. 그만큼 꽃 한 송이 볼 만큼 여유 없이 살아온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준 적 없고, 받아 본 적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어색할 뿐이다.

보다 돈이 좋고, 먹는 게 좋다면 그런 거다. 내가 다른 사람의 가치를 정할 수 없기에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가치도 인정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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