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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Dec 23. 2023

넬, '그리고, 남겨진 것들'

너무 소중했던 그러나 죽어버린

    무력하게 내뱉은 '안녕'은 사실 그리 무력하지 않았다. 관계의 마침표였다. 우린 요란하고 철이 없으며 그렇기에 값진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마무리하는 말이, 하필이면 '안녕'이었다. 남겨짐의 당사자로서 또는 떠남의 목격자로서 내뱉을 수 있던 유일한 말은 우리 관계의 수명을 스스로 끊는 칼날 같은 단어뿐이었다. 담담하기 위해 최선으로 노력했지만 끝내 그럴 수 없었던 배웅을 했다. 세상 모든 건 유한하다. 너무 뻔한 진실이라 자주 잊히는 것뿐이다. 영원이길 바랐던 사랑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가슴으로 느끼는 건 다른 일이다. 아픈 마음은 눈물을 불러냈다. 평소 눈물이 흐를 때 굳이 참으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다. 그 울음에 걸맞은 눈물을 쏟으며 슬픔을 감내하고는 한다. 그날도 역시 배웅 후 방에 들어와, 가슴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낭비에 가까울 정도로 눈물 소모했다. 지친 몸과 마음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고마웠고,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맘껏 미워할 수만은 없어서, 그런 내가 더 미워졌다. 남겨지는 건 아픈 일이었다. '안녕'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 무대에 적막을 견디며 초라하게 앉아있는 듯한 참담함이었다. 내 삶의 무대에서 이 사람이 다시 캐스팅될 일이 있을까 싶었다가, 부질없는 기대를 한다며 다시 스스로를 탓했다. 이제 화려했던 무대 장식들을 하나씩 떼어내야 했는데, 그것마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겨진 사람이 되어 무대를 정리했다. 둘의 시간이 남긴 추억의 부산물들이 상당했다. 꽤나 무게가 나가는 지난 시간의 흔적들을 혼자 들 수 없었다.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짐을 내팽개치고 그냥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쩌자고 저리 많은 추억들을 쌓았을까. 누구나 언젠가는 죽고 시들지만,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식물에 '너는 또 어쩌자고 어차피 질 곳을 피웠니'라고 묻지 않는다. 우리도 그냥, 그랬을 뿐이었다. 분명히 빛났던 날들이었고 이별 따위는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한 사람이 떠나고 한 사람은 남겨져야 한다는 서글픈 진실을 마주할 겨를이 없던 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날들은 놀이공원의 풍선 같았다. 손에 꼭 잡고 있지 않으면 풍선을 날아가고 다시는 볼 수 없어진다. 이 관계를 붙들고 있는 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고 곧 내가 놓으면 '우리로서의 우리'는 소멸된다는 걸 느꼈을 때 참 서글펐던 기억이다. 그렇다고 영원히 혼자서만 풍선의 끈을 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장 큰 힘으로 무언가를 움켜쥐었을 때보다 더 큰 힘과 고통으로 손을 폈다. 이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우리의 시간과 추억은 날아가게 되었다. 기억 속 어딘가에 안착할 테고, 참 꿈같은 시간이었다며 언젠가는 돌아볼지도 모르겠다.

넬, '그리고, 남겨진 것들'

    오래 슬퍼하다가 문득 '이별은 어때? 준비한 만큼 어떤 아픔도 덜 해?'라는 노래 구절이 떠올랐다. 넬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의 가사 일부분이다. '그리고'는 문장과 문장을 선후관계로 이어주는 단어다. 그러니 '그리고, 남겨진 것들'은 어떤 사건, 아마도 이별이나 상실에 대한 후일담이기도 한 것이다. 가사로 조금 어림잡아보면, 제목을 '이별 후, 남겨진 것들'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남겨진 나보다야 낫겠지만, 그 자리에 오롯이 고여있는 나를 두고 떠난 그 사람의 마음도 마냥 편하진 않겠지,라고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던 중이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며 스스로를 비웃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그 사람은 우리 관계에 '이별'을 선고했던 것인지. 조금씩 떠나가는 스스로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애를 썼겠지만, 사람 마음이 마음처럼만 되는 아름다운 세상은 여태 없었고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윽고 헤어질 결심과 준비를 했던 그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차츰차츰 정리를 하고 몇 번의 리허설을 거쳤을 마음에 애가 쓰였다. 가사 한 줄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준비한 만큼 어떤 아픔도 덜 해?'라는 부분을 들으며, 부디 그 사람은 애써가며 멀쩡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 어떤 아픔도 덜 하냐고 물었던 화자는, 사랑은 다시 할 만하냐고도 또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자조 섞인 대답을 스스로 한다. 그저 두렵기만 하다고. 때때로 과잉된 감성은 사랑에도 생애를 부여한다. 죽은 사랑을 애도하던 나 역시 다음에도 또 버려질 사랑이 염려되어 두려움을 느꼈다. 이토록 아픈 생채기도 언젠가 아픔이 조금씩은 아문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인내심이 없는 편이라 그 시간을 서두르고 싶어 괴롭겠지만, 어쨌든 통증이 가라앉아 새 사랑을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종결된 관계를 슬퍼하며 다음 사랑을 떠올릴 상상력은 없었다. 그렇게 이 노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멍하니 보내다가, 어쩌면 '그리고, 남겨진 것들'은 세상의 어떤 죽음들을 애도하는 슬픈 장송곡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생명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사람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무엇이든,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상실된 이후의 이야기가 '그리고, 남겨진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은 결국 '혼자 되뇌어 보는, 그리고 너에게 닿지 않을 널 보내는 그 말'로 마무리된다. 회신을 영원히 들을 수 없어 혼자 되뇌어야만 하고, 그 대상에게 닿지도 못한다. 그러니 '그리고, 남겨진 것들'의 수신인은 '죽어버린' 누군가 혹은 무언가다. 그렇기에 마지막 당부나 질문은 끝내 정확히 전달되지 못 한 채 반송되어 다시 스스로에게로 쓸쓸히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은 '처음엔 많이도 힘들었지'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하지만 받아들이고 나니 이젠 그게 너무 슬픈 거지'라는 가사로 이어진다. 이별과 상실 이후 감정들의 형태소가 있어 분석해 본다면, 처음에는 가사처럼 힘들고 막막하고 괴로운 심정들이 주를 이룬다. 아마 어느 학자의 말처럼 믿기조차 힘들다며 '부정'할 수도 있다. 슬픔은, '부정'이 '인정'으로 바뀌면 찾아온다. 사람은 결국 두 번의 헤어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 번은 이별을 겪을 때, 그리고 마지막 미련과 기대마저 포기하고 체념할 때다. 전자가 '힘듦'이면, 후자는 '슬픔'이다. 달라질 게 없다는 걸 확인할 때, 힘듦을 구성하던 다양한 감정들이 '슬픔'으로 뭉쳐 사람의 마음과 가슴에 얹힌다. 그래서 '그리고, 남겨진 것들'의 화자는, '근데 이렇게 살아지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긴 해'라는 말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는데, 이런 무채색 세상에서의 '잔존'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서글픈 반문이다. 슬픈 화자는 그래서 질문도 혼잣말도 아닌 넋두리를 한 다음 '너에겐 닿지 않을 널 보내는 그 말'이라며 말을 마치며, 처연한 현악기 소리가 짧지 않게 곡을 이어지다 곡을 마무리한다. 가사 없이 이어지는 이 씁쓸한 연주로부터,  상실의 비애에 잠긴 초점 없이 공허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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