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의 팬으로, 오래도록 함께 호흡해
공연/넬, <Christmas in Nell's Room 2023>
'사는 건 원래 다 힘들지.'
아직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 내가 자주 쓰는 문장이다. 삶의 본질은 아무리 생각해도 즐거움에만 있진 않다. 동굴인지 터널인지도 몰랐던 길었던 어둠을 지나 이제 조금씩 빛이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삶의 대부분은 아픔과 괴로움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건 그 아픔과 괴로움을 억지로라도 견뎌내라며 제시된 도달하기 아주 어려운 이정표처럼 여전히 느껴지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행복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전에는 행복은 사실 주입된 강박적인 환상이라고까지 여겼던 적이 있으나, 세상에는 '행복'이라는 말 이외의 어떤 언어도 가당치 않을 감정들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물론 행복의 지속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잠깐의 행복은 곧이어 다시금 긴 아픔과 괴로움으로 치환된다. 그 짧은 행복의 순간을 위해 아주 긴 아픔과 괴로움을 견뎌야 한다는 건 아직도 부조리하게만 느껴진다. 인생에는 게임에서처럼 'Skip' 버튼이 없다. 우리를 무례하게 또는 난폭하게 방문하는 감정들을 온전히 그리고 모조리 느끼고 아파해야 하는 게 삶이다. 그 아픔들을 겪다 보면, 이렇게라도 살아있는 게 혹은 살아지는 게 도대체 의미라는 게 있는 것인지 궁금할 때도 있다. 긴 어둠 속에 있는 동안 특히 이런 고민이 많았었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야 한다는 순환논리적인 궁색한 이유에 깊은 염증을 느끼기도 했다. 사는 건 원래 힘들다. 그럼에도 그 힘듦 사이사이에, 가끔은 행복이 찾아오기도 한다. 지금이라고 삶에 빛이 충만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참 감사하게도 빛의 존재는 확인할 수 있었던 2023년이기도 했다. 실질적인 연말은 12월 31일이지만, 연말이 되면 나는 밴드 넬의 공연에 감으로써 내 한 해를 마무리한다. 무대가 암전이 되었고, 첫 곡 '섬'의 첫 구절 '꽤나 조그만'이 무반주로 나올 때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공연의 이름은 <Christmas in Nell's Room>이지만, 개인적으로 그 공간이 방이 아니라 하나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만의 섬으로의 여정이 고요하면서도 울림 있게 시작됐다. 짧게 편곡된 '섬'이 끝나고 이어서 'Afterglow'가 연주되었다. 꽤 오래 전 'Afterglow'의 가사를 모두 읽고 펑펑 운 적이 있었다. '나의 시간들이 끝나려 할 때쯤'의 구절부터 특히 많은 눈물을 쏟았다. 이번 공연에서도 'Afterglow'의 전주가 흘러나올 때부터 조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내게 있어 'Afterglow'는 넬이라는 밴드를 단순한 좋아함 이상으로 따르게 만든 곡이며, 살아가며 아팠던 순간마다 꺼내 들은 음악이기도 하다. 'Afterglow'라는 노래에는 나의 저밋하고 아리며 때론 머뭇거렸던 손자국이 모두 묻어있다. 곡을 들으며 나의 지난 역사가 스칠 때 마음이 조금 쓰라렸다.
'Afterglow'가 큰 힘이 되어준 순간도, 또 모든 걸 포기하고 'Afterglow'만 들어댔던 순간들이 모두 떠올랐다. 그렇게 내게 있어 더없이 큰 의미를 지닌, 어떻게 보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노래를 라이브로 오랜만에 듣게 된 감격이 컸다. 산타 같은 건 없다며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에 아침에 일어나니 선물이 가득 담긴 걸 발견하면 이런 기분일까. 'Afterglow'에는 '오랫동안 머물러줘'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삶의 매 순간마다 함께하는 넬의 음악들을 들으며, 나는 넬의 팬으로 오래 머무를 것이다. 한 명의 팬이 넬과 함께 호흡하며 오래도록 머무른다는 말에 미약한 힘이라도 있다면, 부디 넬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줄 수 있기를 바란다. 'Afterglow'의 라이브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공연장에서 듣게 되었다. 어쨌든 무슨 일들이 그 사이에 있었든 살아는 있으니 가능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니, 살아야지. 살아서 앞으로도 이 곡의 라이브를 듣고 또 들어야지. 생의 연속성을 골똘히 회의하고 의심하던 내게 희망을 주는 참 고마운 밴드가 바로 넬이다.
이번 공연의 전체적인 셋리스트가 굉장히 참신했다. 덕분에 'Onetime Bestseller', '시간의 지평선', '백야', 'Separation Anxiety' 그리고 '치유' 등의 곡들도 오랜만에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 'Separation Anxiety'는 이번 공연장에서 새삼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전달한 노래였다.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아주 아름다울 테니'라는 구절이 'Separation Anxiety'에 있다. 그러면서 화자는 '나를 떠나지 마요'라는 가사를 반복적으로 읊는다. 삶에 드리워진 아픈 그림자가 아주 긴 터널처럼 오래 이어졌고, 나 역시 스스로 어딘가가 고장이 나거나 망가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내고 싶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만날 때가 있었다. 그랬던 어떤 순간들에 무기력하게 내뱉은 '나를 떠나지 마요'는 참 힘이 없었다. 어떤 날들에 삶은 '상실의 연속체'와 등가의 단어였다. 과연 스스로가 고쳐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어두운 아픔을 환하게 비춰 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비로소 나는 나 역시도 고쳐지게 되면 아름다울 수 있으니 제발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서글픈 마음을 품었다. 지리한 '고침'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의지다. 나는 이전보다는 낫고 싶고, 나아지고 싶다. 'Separation Anxiety' 라이브를 들을 때, 고장 난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누구보다 심하게 나를 책망하고 미워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먼저 고쳐야 했던 건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증오였지만 이에 대해 무지했다. 이제야 자신을 보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다. 나를 할퀴었던 손으로 나를 안아주는 게 어색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나는 조금씩이라도 고쳐질 수 있겠지.
'Dystopian's Eutopia'를 시작으로, 'Crack the Code', 'Moon Shower' 그리고 'Hollow'까지 신곡 메들리가 이어졌다. 신곡들의 첫 라이브가 어떤 무대 연출과 함께 들려질지 기대가 컸는데 정말 이질감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직 멋지기만 했다. 특히 ’Moon Shower‘는 음원보다 몇 배는 더 라이브가 좋았고, ’Hollow‘의 무대 연출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신곡들의 연주가 끝나고는 공연의 피날레를 향해 달려갔다. 'Fantasy'를 시작으로 '기생충'까지, 소위 말하는 '달리는' 무대들이 이어졌다. 불후의 사골곡이라 생각했던 'Ocean of Light'가 빠진 게 새삼 놀라우면서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넬의 음악이 정말 많다는 걸 역시 느꼈다. 그 많은 음악들이 촘촘한 그물처럼 어떤 감정의 순간에도 날 응원하고 지지해 준다. 삶을 지탱해 주는 음악이 있고 그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밴드의 공연에 매 년 갈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 본 공연 마지막 곡은 ’Movie‘였다. 이 무대를 2018년에 이어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그야말로 ’다행‘이었다. 살아생전 다시 못 볼 것만 같았던 라이브 버전의 슈게이즈 ’Movie‘를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고, 별일 없이 잘 살아있음이 '다행‘으로까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Movie'를 앞두고, 보컬 김종완은 '이 노래를 이렇게 만들었던 누군가도 잘 살아있구나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멘트를 했다. 이 지점이 내가 넬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Separation Anxiety'의 가사처럼, 나 역시 스스로가 '고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 포기를 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포기란 패배와 실패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넬의 음악을 들으며, 어쩌면 이 밴드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 생각될 때가 많다. 많이도 아팠을 거라 추정되는 인생 선배가, 그래서 '그냥 포기할래 이젠 그만둘래'라는 'Movie'의 가사까지 썼던 누군가가, 이제는 덜 아프고 더 담담히 자신을 방문하는 일들과 감정을 대하고 있는 걸 보면 나 역시도 시간의 힘을 믿어 볼 희망이 생긴다. 넬의 음악이 내게 큰 위안과 희망이 되는 이유다. 죽을 것만 같던 일들에도 넬은 죽지 않았고, 그 결과 조금의 삶의 여유를 얻은 채 멋지게 자신들의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 물론 그 걸음들이 이젠 아픔과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통증이 줄어들고 삶을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절망 가득한 세상에서 정말 소중한 희망이다.
공연은 '12 Seconds'를 끝으로 모두 마무리되었다. 엔딩곡 '12 Seconds‘는 언제나 그랬듯 웅장하고 공허하며 또 조금은 스산하고 쓸쓸했다. 공연 첫 곡이 ’ 섬‘이었어서 그런지, '12 Seconds‘ 곡 후반부에 몰아치던 하얀 종이비들이 우리만의 아주 비현실적인 섬에 내리는 폭설처럼 느껴졌다. 1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든, 다 지금의 눈과 함께 여기 묻고, 잊고, 비워낸 후 다시 한 해를 살아낼 용기를 주는 것만 같았다. 사는 건 원래 힘들다. 무엇도 기약할 수 없는 시기의 삶은 유난히 더 외롭기도 하다. 내게는 최소한, 그래도 1년을 버티면 넬의 연말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목표'가 있다. 그리 거창하지는 않은 목표일 수 있겠지만, 때론 소소하고 소박한 무언가가 삶 전체를 힘겹지만 강하게 지탱해주기도 하는 법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난 항상 넬의 연말 공연이 있기에 겨울이 가장 좋다고 대답하고는 한다. 넬의 연말 공연에 가서, 지난해 연말공연과 올해 연말공연 사이의 1년을 떠올리고, 그럼에도 잘 견디며 버텼다는 수고를 스스로에게 전하는 순간이 퍽 좋다. 올해 개인적으로는 특히 변화가 많았던 한 해였기도 했다. 많은 회의와 비관을 이겨내야 했다. 나는 누구보다 내게 인색한 사람이지만, 이때만큼은 그래도 '고생했네' 정도의 응원을 스스로에게 건넸다.
이제 '다음'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사라지는 나이가 되었다. '내년'이라고 해도 별 기대가 안 되며, 여전히 다음 1년 동안 삶은 때때로 아프고 힘겨울 것이라는 비관이 선행되는 것도 사실이다. 때론 거지 같은 순간들도 많겠지만, 그 끝에 다시 마주할 넬의 공연을 기약하면서 그래도 잘 버텨야지. 잘 버티며 내년에도 넬의 팬으로 머물러야지. 비가 내리면 젖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그렇게 멈춤 없이 나의 길을 또 1년 걸어야겠다. 늘 하는 얘기지만, 죽을 것 같은 일들에도 죽지 않고 버텨낸 경험으로 우린 삶의 굳은살을 얻는다. 내년에도 굳은살은 원치 않게 또 늘어나겠지만, 그 굳은살들이 다시 나를 지켜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럼에도 유난히 삶이 벅찬 순간에는 다시 넬의 음악을 듣고 이들의 공연을 기약하며, 그렇게 서글프고 괴로운 날들을 하나씩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