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남정네들의 소리와 살려달라고 외치는 한 여인의 소리. 숲 속 가까운 저편에서 소리가 점점 거칠고 요란해지고 있었다.
중대장은 1 소대장에게 신호를 보내 정탐병 몇 명을 뽑아서 알아보라고 전했다. 김소위는 1 분대장 박하사와 2 분대장 이병장과 함께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달빛은 소나무들 사이로 하얀 풀밭 위를 덮고 있었다.
그 사이로 실로 경악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남정네가 피로 범벅이 된 채 엎드려져 있었고, 한 여인네가 일반인으로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3명의 남자들에게 둘러 싸여 겁에 질린 채 주저앉아 있었다. 그 남자들 중 하나가 두건이 벗겨진 민머리를 내 비치고 있었다. 달빛은 그 자의 정수리 부근을 정확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왜군!’
세명의 정탐원들은 아마 소리를 내라고 했으라면 동시에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그 두건 벗겨진 자는 주위의 놈들과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뭐라 지껄이고 있었다.
이윽고 그중 한 놈이 공포에 질린 여인을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여인에게서 외마디의 비명은 그 자의 한 손에 막히고 차마 긴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중대장은 정탐 보고가 늦는데 의아함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순간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바로 그때, 세명의 정탐원들이 숨을 헐떡이며 돌아오고 있었다. 중대장의 빠른 직감은 이내 병사들의 수를 급히 세는 대로 이끌었다.
어둠 속에서 3명 모두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명이 뒤에 오고 있었다. 병사들보다 작은 체구의 그 누군가가. 플래시를 들추어 정탐원들을 살폈다.
그리고 뒤에 따라온 자. 놀랍게도 여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김하사가 왼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