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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green Jul 11. 2024

전투의 전개

어쩔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역사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적어도 여기서 발을 빼도 될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현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수밖에. 사실 이것이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러나... 분명 많은 백성들이 무지막지하게 죽을 것이다. 그것도 처참하게. 역사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어디 있을 곳도 없으면서 무고한 백성들이 살육당하는 것을 보고 있으란 말인가'. 


여러 생각이 중대장의 머릿속을 채우는 동안, 돌아온 두 병사의 얼굴과 마주쳤다. 그들의 표정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

중대장의 철수 명령 따위는 도저히 먹혀들 것 같지 않은 결의와 적개심이 읽혔다.


또 다른 얼굴.

선량하고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젊은 처자의 얼굴을 보려는 순간, 중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낯에서 시선을 숨기고 말았다.


....



대승을 거둔 1차 전투 후였지만, 성내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성은 작았고, 많은 수의 적들은 눈으로 보이는 전면의 땅의 거의 모든 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들은 후퇴할 기세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 있으면 2차 상륙대가 도착할 것이다.


거의 여단급 규모의 1차 상륙대의 규모를 본 중대원들도 그 위압감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곧 어쩔 수 없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옅은 공포감을 속으로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살상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젊은 병사들에게 아무리 적이지만, 바로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그것도 자신이 죽인다는 사실은 적의 위세에 대한 공포심보다 더한 설명할 수 없는 괴로운 고통이 마음과 생각에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전이라면 멀리서 얼굴도 잘 안 보이는 적을 사살하는 것이지만, 조금 전에 적의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수 있었던 거리에서 수많은 이가 죽음의 경계를 지나는 것을 보는 것은 극복하기에 쉽지 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을 것이었다. 많은 중대원들이 공포, 무력감, 현실부정, 등 수많은 괴로운 감정과 생각을 애써 짓누르며 그저 불쌍한 성내 주민들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을 채우려 하고 있었다. 


“장군, 북서쪽 산등성에 위치한 성벽이 위험할 것입니다. 그쪽에 군사를 더 보내시고, 허술한 성벽이나 진지가 없나 살펴보아야 합니다”. 김일병이 중대장과 함께 부산포 부사에게 말했다. 


“거기는 산새가 험하여 적이 공격하기 오히려 여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요”. 부사가 말했다. “역사에 의하면 적은 그곳으로 몰려들어 성을 정복했습니다”. 중대장이 힘을 주어 말했다. “아마 적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우리의 허를 찔러 그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역사학도인 김일병이 거들었다.


부사는 군사 50여 명을 더 그쪽으로 보냈다. 부사는 여전히 의심쩍이었다. 중대장과 김일병은 아쉽고 여전히 못 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대장은 두 분대를 북서쪽 성채로 보냈다. 


성의 높이는 방어 요새 치고는 너무나 낮았다. 성위에서 내려다보면 적의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느낄 정도로 낮았고 일반 농가에서 쓸 수 있는 사다리 정도로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성곽 위로 목책을 둘러 적의 화살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성곽의 높이를 올리는 효과를 줄 참이었지만, 여전히 대량의 적의 막기엔 너무나도 초라하고 낮은 성이었다. 게다가 저들은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은가.


성 정문을 중심으로 평야 지대에 놓인 성곽 주위로 해자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깊지 않고 단지 적의 기동성을 지연하고 가까이 다가오는 화차나 목탑공격을 저지하는데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적은 화차와 목탑공격을 감행할 것 같지 않다. 이전 공격에서 적은 해자를 메꾸려고 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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