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외로운 존재인가?
페르미 패러독스
1950년 오스트리아계 미국 물리학자 (노벨상 수상)인 엔리코 페르미는 재미있는 역설을 내놓았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어느 정도 발달된 문명의 로켓기술 (대략 빛의 속도의 십 분의 일)을 보유하면 우리 은하 크기의 정도의 은하를 전체를 정복하는데 한 200만 년이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0만 년의 시간은 우주의 나이 (약 137억 년)나 은하의 나이 (약 136억 년)를 고려하면 미약할 뿐이다. 은하의 나이와 은하의 크기를 고려하면 발달된 외계 문명들이 충분히 생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문명은 지금 우리 은하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유독 인류만이 외로이 우주를 바라보며 외계문명을 찾고 있을까?
과학적으로 우리 은하에만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질 수 있는 행성의 존재는 얼마든지 예측된다. 지금도 5000개 이상의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행성들이 발견되고 있어 매년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아직 발달된 로켓기술을 갖추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충분히 발달된 문명이 있지만, 그저 무관심한 것일까?
그 가설이 나온 후 얼마 후 페르미는 사망함으로써 가설에 대한 논의는 후대의 인물들에 맡겨진다.
재밌게도 1975년 마이클 하트 (Michael Hart)가 RSA (Royal Society Academy)에 기고한 글에 외계문명의 부재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만약 200만 년 전 이전에 외계의 탐사체가 출발했다면, 벌써 지구에 도착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연성이 충분함에도 외계 문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결국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것이다. 기고문에도 다른 가능성, 예를 들어 지구 문명의 이외의 발달된 문명이 이제 막 태어났다거나, 이미 인류 역사 가운데 지구를 방문하였지만 그저 무시하고 지나갔을 가능성도 얘기하고 있지만, 그 자신은 고독한 인류를 지지하고 있다.
5년 후에 같은 저널에 기고된 또 다른 글에 의하면 (Frank Tipler, "Extraterrestrial intelligent beings do not exist"), 행성 간 여행 (Interstellar Travel)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료 공급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항성과 항성 사이의 이동 사이에 인공지능 (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의한 자기 복제를 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발달된 시스템이 지구 역사 속에 발견됐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우리 문명이 유일한 발달된 것이라고 했다.
거대필터 (The Great Filter)
1990년대 들어서 로빈 한슨 (Robin Hanson)에 의해 다시 페르미 패러독스를 설명하는 시도가 있게 되는데, 이때 나온 것이 “거대 필터”(Great Filter)라고 하는 가설이다.
한 행성에서 미생물이 발생하여 보다 발전된 형태로 변화하다가 고등생명체를 이루고, 나아가 문명을 일으키고 마침내 발달된 과학기술을 가지고 우주여행이 가능한 단계를 가기 위해서는 계속적이고 엄격한 여과과정(Filtering)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무기물질에서 생명의 근간이 되며 세포의 구성물질인 유기물질로 변환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실제로 실험적 증명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이렇게 단세포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단세포가 다세포 나아가 단일분자가 고분자가 발전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거대 필터 이론에서는 한 필터를 통과해서 윗 단계의 필터로 진행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인류 문명과 같은 고도의 문명을 이룬다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얘기하고 있다.
한슨이 주장하는 “거대 필터”의 필터링 단계를 요약하면,
첫 번째 필터로써, 행성이 별(항성)의 해비터블 존(habitable zone)*에 위치함으로써 생명체 존재의 가능성이 있었야 한다.
둘째, 해비터블 존에 있는 행성에서 생명체 자체가 발달해야 한다.
셋째, DNA와 RNA를 통해서 생명체가 자가생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단세포가 보다 복잡한 세포로 진화해야 한다.
다섯째, 다중세포로 이루어진 발달된 생명체들이 생성돼야 한다.
여섯째, 생식과정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과 번식이 있어야 한다.
일곱 번째, 발달된 생명체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 번째, 발달된 생명체가 우주여행이 가능한 진보된 기술을 생성시켜야 한다. (여기까지가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필터라 볼 수 있다.)
아홉 번째, 우주여행을 통해 우주 식민지를 만들 수 있는 생명체가 스스로를 파괴함 없이 다른 항성계로의 접근을 시도한다.
인류는 나름대로 발달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아직 의미 있는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지만, 전파천문학을 통해 외계와 교신도 가능해졌다. 설사, 위에서 열거한 필터를 다 통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우리 은하의 나이(약 136억 년)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얼마간의 항성 간 여행이 가능한 문명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만약 우리 인류가 마지막 필터를 눈앞에 두고 있다면, 단순 계산에서 충분히 존재 가능한 우리 인류보다 발달된 외계문명의 존재에 관한 아무런 신호도 못 갖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거대 필터를 적용하면 그들은 마지막 단계에 스스로를 파괴해 버렸거나 우리가 생각 못 하는 더 무지막지한 필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우리 인류가 이 거대필터를 무사히 통과했다거나 (스스로 파괴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한다고 하면, 그것이 외계문명과 조우 없이 살아온 이유에 해답이 될 수 있다. 인류는 유일한 생존자인 셈이다. 심지어는 다행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인류일까?
그렇다면 왜 인류일까?
인류는 거대필터라는 무지막지한 위협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온 존재이다 (지금까지). 참으로 의아스럽고 신비롭고 경이롭다.
*Harold Urey와 Stanely Miller에 의해 1953년 시카고대학에서 실험이 이루어졌다.
자연적인 환경 (고열, 번개 현상과 같은 전하 방전, 산성비 같은) 하에서 무기물질에서 유기물질 (실험에서는 아미노산)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였다.
**Habitable Zone태양 같은 별(항성)로부터 액체로서의 물이 존재 가능케 하는 거리에 있는 행성의 궤도 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