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이민진
에쓰코가 솔로몬의 팔을 쓰다듬었고, 세 사람은 숨 막힐 것 같은 그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에쓰코는 회색 상자 같은 관청에서 기어나가서 바깥의 빛을 다시 보고 싶었다. 홋카이도의 하얀 산들을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눈 덮인 서늘한 숲에서 나뭇잎 없는 나무들 아래를 거닐고 싶었다.
인생에는 모욕적인 일과 상처받을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에쓰코는 자기에 국한된 것이나 자기가 꼭 치러야 하는 것만 챙기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솔로몬이 받은 모욕을 가져와서 이미 수많은 굴욕으로 넘쳐나는 자신의 서류철에 끼워 넣고 싶었다.
<파친코> 중에서
모욕적인 일과 상처받을 일은 많다. 어느 누구의 인생에서나 그렇다.
모욕과 상처를 피할 수 없다.
다만, 타인의 모욕과 상처를 자신의 서류철에 끼워넣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부럽다.
내가 받은 상처와 모욕은,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해 위로받은 적이 있던가?
나의 상처는 늘 나만의 것이었다.
나는 말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누구도 내가 상처받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하였다.
나의 모욕은 늘 스스로 극복해내야하는 것이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노력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래서 늘 부지런했고 성실했다.
그러려고 불안하게 종종거렸다.
그런 결과, 모욕을 이겨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을, 누구의 위로도 없이 혼자서 잘 해내고 있다.
그 결과, 외로운 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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