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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준 Jun 26. 2023

그냥 서로 좋아하자는 겁니다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 황보름

영주는 입간판을 안으로 들이고 문을 닫았다. 소설이 가득 꽂힌 책장 앞에 서 있는 승우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승우가 곁으로 다가온 영주에게 방금 꺼낸 책 제목을 보여줬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영주가 언급한 작가의 소설. 승우는 책을 제자리에 도로 꽂아 넣으며 말했다. 


(중략)


"저한테 조르바는 자유의 종류 중 하나일 뿐이에요. 이 세상엔 여러 자유가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유는 조르바인 거죠.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엄두도 나지 않아요. 저도 애초에 그 소설 속 화자로 태어난 사람이니까요. 조르바 같은 사람을 동경할 뿐인, 그런 사람. 그게 저예요."


(중략)


"아닙니다. 우린 다 과거에 갇혀 살죠. 그냥 대표님의 생각이 저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면 좋겠다 싶었어요."

"어떻게요?"

"조르바처럼요."

"조르바처럼?"

"쉽게 사랑하면서"

"사랑을 쉽게?"

"저한테만 쉽게요, 제 욕심이죠."


(중략)


"대표님, 전 지금 대표님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서로 좋아하자는 겁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image by  愚木混株 Cdd20 from Pixabay


이 글이 담긴 챕터의 제목은 <그냥 서로 좋아하자는 것>

이 챕터를 시작하자마자 3d처럼 종이를 뚫고 튀어나온 단어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는 순간, 

꺆!!!!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 바로 그 그리스인 조르바를 영주와 승우가 화제로 삼고 있는 챕터를 시전하다니.

가장 좋아하는 책 한권을 뽑으라고 하면, 늘 주저없이 선택했던 그 책이,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속에서 언급되는 걸 보게되는게 이렇게 신기할 일인가 싶지만, 신비로웠다.

내가 사랑한 책을, 황보름 작가도 사랑하고 있고, 서점주인 영주도 사랑하는구나~하는 공감대에 대한 제멋대로의 해석과 그로 인한 착각 때문일거다.


서점주인 영주를 마음에 두고 고백을 하려는 작가 승우는, 역시나 서점에 어울리는, 역시나 책과 분리할 수 없는 두 사람에게도 잘 어울리는 소재로 고백의 문을 열었다. 똑똑한 선택.

사랑을 고백하는 승우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마음은, 

"우리도 조르바처럼 거침없이 사랑해보는게 어때요?" 였을텐데, 

영주의 주저하는 모습에 승우는 격정의 감정을 차분하게 누르고 눌러, 

"그냥 서로 좋아해보자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하는 고백이든, 감사든, 용서든, 충고든, 

책에 빗대는 건, 적어도 내겐 낭만이다.


#어서오세요휴남동서점입니다 #황보름작가 #서로좋아하자는것 #그리스인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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