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늘 약해지기 마련

<명랑한 은둔자> 캐롤라인 냅

by 미스준
우리가 아무리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믿어도, 감정은 늘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 다음에는 이내 감정이 지나갔다. 이런 순간에는 승리도 있고, 희망도 있다. 이런 사소한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자신으로서 잘 살 수 있다는 사실,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다는 사실, 커져가는 고통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또 한순간을 술 없이 견디는 것은 또 한 번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다.
image.png?type=w773 designed by freepik

일상은 감정의 요동 속에 있다.

삶의 대부분을 소진시키는 감정이라는 것은, 사실 '시간' 앞에서는 결국 무너진다.

수술한 자국이 시간을 들이면 서서히 아물듯이, 상처난 감정 또한 완벽하지 못한 기억에 기대어 옅어지기 마련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20대에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분노했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라고 생각한 것)에 분노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미웠고, 나같은 인재를 채용하지 않는 회사를 경멸했고, 나에게 무관심한 세상에 화가 났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30대에는 (나와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질서, 조직, 시스템을 비난했다.

결혼을 통해 갑자기 생성된 부당한 역할, 직장생활에서 맞닥뜨린 부조리(하다고 여긴)한 체계, 세상에서 나만 희생당하는 듯한 피해의식에 화가났다.


40대에 중반을 넘어가면서,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분노하는 것이 힘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분노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듯 했던 부모에게,

내 맘대로 커주지 않는 아이에게,

남의 일처럼 일하는 직원에게,

나의 업무기여도를 인정해주지 않는 조직에게, 늘상 느껴왔던 불만들이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온전히 내 걱정만 하는 부모에게,

사춘기를 무난히 지나며 바르고 따뜻하게 크는 아이에게,

직장상사로서 내 체면을 유지하게 해주는 직원에게,

근거없었던 편견에도 능력을 인정해주는 조직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 화났을 때 생기는 상처들이, 횟수가 줄었다기 보다는 생각보다 깊게 내 존재를 흔드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어서 일거다.

나를 건드는 것을 절대 용납 못한다고 여겼던 알량했던 자존심이, 아무리 나를 흔들어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묵직한 자존감으로 서서히 뿌리내릴 즈음, 보통 건강을 한번은 잃는다.

그리 되면, 나의 모든 관심은 세상의 질서가 아니라 내 몸에만 집중되기 마련. 건강을 잃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나를 향해 발생한 어떤 일도 '그럴 수 있어.'가 된다. 중년들의 상태메시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그냥 나온게 아니다.


이 정도 되면, 인간의 삶은 처음부터, 시간 순서대로 겪을 것들이 설계되어 있는게 아닐까.

어릴 때, 젊을 때는 도저히 알아먹지 못했던 것들이, 일정 시기에 당도하면 '그럴 수 있는' 것들로 양해되는 상황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가장 강력한 마취제이다.


#명랑한_은둔자 #시간은_마취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