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모에 대해서 오랫동안 남몰래 화낸다

<명랑한 은둔자> 캐롤라인 냅

by 미스준
우리는 각자의 부모에 대해서 오랫동안 남몰래 화낸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아닌지,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우리가 어떤 실망과 단절을 겪었는지, 그들이 우리를 키운 방식이 왜 이렇게 꼬여 있었는지, 이 모두에 대해서 화낸다. 이 괴로움을 놓아버리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고, 자기 인식과 성숙함과 시간이 절묘한 비율로 섞여야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혹은 왜 그 일이 가능해지는지, 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에서 가장 아픈 모서리들이 깎여 나가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image.png?type=w773 사진: Unsplash의Suzi Kim

부모, 내 아빠와 내 엄마라는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해본지 오래되지 않았다.


아이에게 부모인 나에 대해 물었다.

"넌 나를 좋아하니?"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는거지."

"그럼 넌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런걸 생각하는 자식이 어디있어? 그냥 부모라고 생각하는거지."


나도 그랬다. 내 아이의 나이에도, 상당히 나이를 먹었던 어른인 시기에도.

부모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부모인 아빠가 어떤 남자인지, 어떤 남편인지, 어떤 아들이었는지에 대해,

부모인 엄마가 어떤 여자인지, 어떤 아내인지, 어떤 딸이었는지에 대해,

부모가 나를 사랑을 가지고 키우는건지에 대해,

내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는건지에 대해,

내 부모가 언젠가 사라질 거라는 것에 대해.


모든 자식은 부모의 나이를 살아본다. 그제서야 그때 가졌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이해는 하지만 평가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

나 자신도 대단하지 않으면서, 대법관이나 재벌총수일 수 없는 우리의 부모는 나보다 더 못한 존재로 여기는게 일반적이다. 평가하려고 하는 순간 속깊이 감사하다고 여겨왔던 그들을 무시하게 될까봐 두려운건 아닐까.


사춘기에, 지금 당장 부모가 없어도 난 충분히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이미 성인의 몸이고, 정신적으로도 독립했다 여겼기에, 생활인으로서 그들에게 무임승차하는 상황만 제외한다면, 내게 부모는 있어도 없어도 되는 존재였었다. 그냥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부모와 대화는 불필요했다. 아침에 등교해서 야자에 독서실까지 돌고 집에 오면 1시가 넘었고, 내일도 어제와 같았다. 대화할 시간도 없었고, 대화할 내용도 없었다. 어쩌면 나에게 말을 거는게 싫었던 것 같다.


지금 내 아이가 딱 그 시기이다.

아이가 나와 다른 점은, 내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길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나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이기에, 더욱 궁금하다. '아이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때의 내 부모는 나를 사랑했겠지만, 나에게 멘토가 필요한지 몰랐다.

지금의 나는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기꺼이 멘토가 되어줄 수 있다.

나는 아이의 마음에 드는 부모였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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