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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곤스톤 Dec 31. 2023

[끄적 에세이 - 18] 내가 인정받고 싶은 이유

오해를 받으면 피해볼 거라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유치원에 막 입학할 때 즈음에는 언어발달지연이 있어 언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했다. 다행히도 상황의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기에 기억이 남아있다. 내가 입학한 유치원은 미술유치원으로 미술을 베이스로 하는 종합학원이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어떠한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라는 과제를 내주셨고 모든 아이들은 그것을 그려내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나도 물론 그 아이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도화지를 지급받고 크레파스와 함께 있는 도화지를 보았다.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무언가를 그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내 모든 예술의 혼을 담에 색깔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려내고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을 완성하면 선생님께 작품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아 나도 작품을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선생님께 전달하니 선생님께서 화를 내셨다. 나는 과제를 이해 못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어발달지연이 있었기에 그동안 오간 내용은 모르지만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그림을 그리면 혼난다는 단순한 구조로 이해했다. 이 사건이 내가 오해를 두려워하던 첫 번째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오해를 가장 많이 받았던 시기인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엄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나는 자주 혼났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은 나에게는 너무 치명적인 성격이었다. 잘못을 했다면 엄하게 혼내는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자주 혼났다는 것은 선생님이 인식하기에 잘못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는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불러냈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도록 유도했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 잘못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했던 것은 화장실을 다녀왔기 때문인데 거짓말하지 말고 말하라는 추궁이 이어졌다. 어린 나이에 그런 선생님이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잘못을 인정했다. 화장실 다녀온 것은 거짓말이 되어서 혼났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잘못했다는 것에 두 번 혼났다. 그리고 얻어낸 이미지는 거짓말쟁이였다.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니까 그게 정답인 줄 아는 모든 아이들은 내 말은 무조건 거짓말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었던 계기였다.


 사건이 있고 난 뒤부터는 학교생활은 지옥이었다. 무조건 잘못은 내가 타깃이고 그때마다 무엇을 잘못한 지도 모르고 무엇을 했다 말하면 거짓말이 되었으며 고집불통의 거짓말쟁이로 남으면서 이러한 이미지라는 것을 악용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나를 때려도 믿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때려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나쁜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사고 치는 아이들은 타깃을 나로 설정하면 내가 대신 혼나기 때문에 모든 잘못이 내가 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잘못을 한 게 없었기 때문에 너무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은 화가 나면 화풀이를 자식들에게 하는 나쁜 아버지였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아버지를 케어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던 어머니는 매일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중에 말해달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학교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해도 나를 위로해 줄 집은 폭력의 연장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의 안식처는 없었다. 집도 학교도 모두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잠시나마 나를 보호해 줄 따뜻한 공간을 찾아봤지만 용돈조차 받지 않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피시방에서 카드번호를 입력하면 게임이 되던 현상이 기억나 돈 없이 피시방에서 후불결제시스템을 이용했다. 밤 10시가 되면 미성년자는 피시방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직원에게 발견된 나는 부모님의 호출로 결제를 하였고 집에 가면 맞는 것을 반복했지만 끊을 수가 없었다. 집과 학교는 폭력의 현장이지만 피시방은 적어도 밤 10시 까지는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쫓겨날 것을 알면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악용했다. 


 이를 악용하는 나는 결국 가족들에게도 문제 있는 아이로 낙인찍혔다. 학교와 집은 나를 때리는 장소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가족에게 잡히면 모든 잘못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지옥 같은 학교에 맞으면서 끌려가는 생활을 반복하더라도 나는 빠르게 그 지옥에서 벗어나 다시 피시방으로 향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항상 10시면 쫓겨날 거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안 하면 계속 폭력의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친척들은 내가 게임중독이 심각한 아이로 오해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끌려간다거나 해병대캠프를 억지로 들어가고 시골체험과 같은 힐링프로그램도 억지로 참여시켰지만 효과는 당연히 없다. 내가 학교에서 당하는 폭력이 단순 꿀밤정도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내 말을 믿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끌려간 곳이 끝나면 당연히 지옥 같은 학교에 끌려갈 것이 분명했고 다시 끌려가면 탈출하기를 반복했다. 


 그때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제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실험체중 하나인 마루타와 같았다. 손가락에 바늘을 찔러보면 어떤 반응이 생길지 궁금하면 내가 당해야 했고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화풀이 용으로 무차별 폭력을 사용할 샌드백이 나였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도 선생이라는 사람은 살펴보지도 않고 내가 누군가에게 시비 걸어서 보복당한 거라 생각하는 것이 미웠다. 누군가 지각하면 나 때문이었고 내가 모르는 잘못도 내가 사 주 한 놈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아이들의 범죄를 이끄는 마피아 보스를 본듯한 시선이었다.


 이런 억울한 상황이 무려 초등학교5학년을 다니는 학생에게 생긴 일이다. 이때 생긴 오해의 대한 두려움은 평생을 나를 괴롭혔다. 오해를 받을 만한 상황은 무조건 피했으며 나를 믿어줄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실을 묵인하고 유리한 쪽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오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그래야 앞으로도 살아가는데 오해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회피를 하다 보니 예전보다는 살만했다. 여전히 내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폭력의 강도가 조금은 나아졌고 거짓말쟁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져 폭력을 당하더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발견되어 도움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전부 도움받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건 도움받았다는 것이다. 폭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행복한 학창생활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5학년 시절보다는 편안하게 생활했단 것에 감사해야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폭력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는 환경이 되어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폭력이 없음에도 자기를 표현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주변사람이 없던 나는 결국 나를 표현해도 폭력이 생기지 않은 것을 인정하고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상대방에게 말하기 위해서 화를 내거나 오히려 내가 그 폭력적인 사람이 되기도 했다. 오히려 이러한 강한 주장을 내세우는 모습에 반해 친해진 사람이 여렸생겼다. 


 하지만 지금 풀어야 할 숙제는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할 때가 아니다. 나를 표현할 때 상대방이 이해 못 하면 오해할까 봐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틀린 것을 말하면 알아들을 때까지 화를 내거나 억지라도 부리는 이유는 오해를 하면 피해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해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에게 피해가 오는 사례는 극희 드물지만 나의 두려움이 오해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심지어 나는 운동으로 인해서 커진 덩치로 나를 함부로 상대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인정받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정받지 않아도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장을 좀 더 내려놓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틀리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얻어내려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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